예술과 삶/포토는~ 詩畵로* 80

브뤼헤의 집

브뤼헤, 북쪽의 베니스 운하가 잘 발달된 벨기에의 도시 그저 터벅터벅 걷던 어느 초가을 날 쌓인 일들도 하여야 할 일들도 잊고 떠난 여행지에서 오늘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않으려 하던 날 그 날의 산책은 지금도 포근하기만 합니다 . . 이명례 화가 그 날, 다리 위에서 내려다 뵈는 작은 집을 그렸습니다 집이 아닌 상점인 듯 하지만 '브뤼헤의 집'으로 이름하였습니다 사진보다 그림이 더 정감이 있고 포근하다는 당연함을 확인합니다 산책 허공에 눈길을 두고 고요에 귀를 기울여요 아, 이만큼이나 왔어요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보이는 건 그림자 뿐 들리는 건 발자국 소리 여기쯤에서 멈출까요 저기쯤에서 돌아설까요 시간을 모르는 오후 계절을 모르는 하루예요 소신 (daum.net) 소신 브뤼헤, 운하를 따라 걸었다 거리..

치자꽃 한송이

아내는 치자꽃을 좋아합니다 치자꽃보다는 치자꽃 향기를 더 좋아하죠 그래서 우리집 테라스에는 치자꽃 화분이 꼭 있습니다 꽃치자이든, 차자나무꽃이든 그 향긋한 향기 하얀 꽃잎은 참으로 곱고도 예쁩니다 치자꽃을 보고 한두마디 툭툭 던지는 것을 즐깁니다 마치 아픈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시가 되기도 그저 넋두리이기도 꽃과 나누는 대화는 참 즐겁죠 것도 향이 참 좋은 꽃이라면 . . 이명례 화가 치자나무꽃 한송이를 제대로 그렸습니다 향이 캔버스 밖으로 퍼져나올 듯 자연의 하나가 되고 세상을 곱게만 보는 그 자신이 치자꽃 향은 담은 사람임을 알고는 있을까요 치자꽃 당신 사랑했었다고.. 치자 치자꽃 당신은 속삭입니다 도무지 지우지 못할 당신의 향기를 가슴 가득 이토록 물들이고서 얼룩조차 없는 하이얀 모습으로 눈송이보..

맨드라미 솔로

퇴근길, 주로 안암오거리 ~ 종각간 버스를 이용하지만 가끔은 성북천변 물길을 따라 걷다가 신설역에서 1호선을 타기도 합니다 물론 그 후로는 종각~인사동~서촌으로의 산책이 이어지고 어느 날, 비가 그친 후 성북천변 퇴근길에서 만난 맨드라미 시골 화단이 아닌 콘크리트 도시 햇빛 가득한 타일벽 아래에 개선 장군인냥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기특도 하여서 카메라 앵글을 잡았는데 구도가 제법, 감히 예술이라 정의하였습니다 . . 이명례 화가 '감히 예술'을 '진짜 예술'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강한 맨드라미 꽃으로 피기까지의 사연에 귀를 기울입니다 꽃과 나누는 이야기 자연은 이야기를 꽃으로 전한다 뿌리 아래 깊숙한 어둠으로부터 어젯밤의 별빛, 새벽의 이슬 이야기까지 바람 차가운 날, 작은 씨앗으로 떨어져 아래의 어둠, ..

카페의 베롱나무꽃

서촌점 맞은편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 후원하는 곳들 중의 하나입니다 가끔 혼자 가서 2층, 갤러리 전시도 보고 1층 카페 창가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거리를 보며 햇살 좋은 날 거리는 찬란하고 눈부신데 카페 한 켠의 베롱나무에도 화사한 꽃이 있습니다 초록 벽 앞에서 빛나는 초가을을 여는 날 너도 나도 우리 모두는 꽃입니다 . . 이명례 화가 꽃무리에 컬러를 더하여서 더 화려하게 더 빛나게 치장을 하였습니다 꽃은 고울수록 좋습니다 꽃이니까요 그의 손길이 바람이 되고 햇살이 되어 꽃을 더 곱게 피웁니다 그 날처럼 카페 사람의 카페에서는 사람만 바뀌어가고 시간의 카페에서는 시간만 지나쳐가요 다른 모든 것들은 낡아가는데 깊어가는데 정물처럼 낡아가고 커피처럼 깊어가고 싶어서 오늘도 사람이 없는 카페에 가요 오늘도 ..

서산동을 걷다

유달산 기슭을 따라 걸어가면 오르막길, 내리막길 좁은 골목들로 이어집니다 이어짐보다는 큰 길을 제쳐두고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그리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산 아래 마을 동무들과 놀던 쪼그리고 앉아 책도 읽던 그 기분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정형적이지 않고 삐뚤삐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 방 안에까지 들리던 그 시절 골목길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희망 닿지 못할 꿈을 보면서 아주 먼 훗날을 이야기하였죠 지나고 보면 그리 크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꿈이었건만 . . 이명례 화가 좁은 골목길 안에 숨어있던 넓은 꿈 높은 산동네보다 더 높았던 꿈과 희망 그림 안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더 낮아진 꿈 더 가까워진 꿈의 피날레를 향하여 골목을 오르며 골목을 오르는 길은 시..

서산동 골목

2018년 10월, 목포 산동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바다쪽으로 걸어 내려왔습니다 울퉁불퉁 길은 흘러가는 시간을 건너온 징검다리였고 낡은 집들 낡은 벽에는 살아온 자취, 겪어온 인생살이 벽화로 새겨 있었습니다 수직 수평, 그리고 앵글을 잡을 때 나에게만의 하이라이트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로 놓습니다 교회는 가리고 십자가만을 왼쪽에 두었습니다 바다로 가는 길과 하늘로 가는 길 고흐, 오베르의 교회 마을로 가는 길과 묘지로 가는 길 이 골목의 끝에는 영혼이 있을 듯 하였습니다 . . 이명례 화가 눈물로 뿌옇게 보여지듯이 그렇게 묘사하였습니다 중간 그림에는 없던 십자가를 완성 그림에는 희미하게 두었습니다 전깃줄이 십자가를 가로로 잇습니다 세로는 하늘과 사람 가로는 사람과 사람 나의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였는지 ..

멜버른의 하오

비 그친 오후의 멜버른 고전과 모던, 숲과 자연이 맛깔나게 섞이는 도시 빗방울의 내음과 함께 꽃의 향기 시간의 뒤섞임들이 실로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호주에서의 시간은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숲과 고전의 도시 가볍게 걷는 길은 늘 즐겁다 김영남 화가 그날의 지금이 아닌 지금의 그날 한 시절의 옛 기억을 불러내어 준다 덕분에 멜버른을 걷듯 오늘 하루를 걸을 듯하다 멜버른 종일 내릴듯한 비 갑자기 뜨는 해 깊숙한 자연 혼잡한 도시 고전 곁의 모던 모던 곁의 고전 셀 수 없는 문화 가늠 안되는 아트 그래서 사람들도 이리저리 섞인다 멜버른에서 먼저 할 일은 길을 잃는 것 (daum.net) 멜버른에서 먼저 할 일은 길을 잃는 것 숲의 도시, 200년에 가까운 역사ᆢ 멜버른에서 먼저 할 일은 길을 잃는 것 길 잃은 ..

뇌샤텔의 저녁에

뇌샤텔을 걸었다 딱히 갈 곳도, 들를 곳도 없었다 어둠에서는 밝음으로 밝음에서는 어둠으로 걷는데 어느새 어둠이 전체를 덮어간다 먹구름과 어둠 저녁비라도 내릴 듯 하다 멀리 바닷가의 끝 홀로 앉아 바다를 보는 이 뒷모습이 보인다 내가 저 곳에 이르기까지 그가 있음이 좋을까 떠남이 편할까 괜한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이 도시는 비가 종종 내린다 김영남 화가 얼개를 툭툭 스케치하였지만 먼 그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하늘은 파란색, 관념을 보라빛으로 넓힌다 더 밝게 그렸지만 여백의 공간일 뿐 그 날, 나의 느낌을 캐치하였다 어두운 곳을 걸을수록 떠오르는 상상과 꿈으로 내면은 밝아진다 어둠을 걷다 낮과 밤의 경계 어둠이 밝음을 덮고 있다 저 멀리 오늘을 살아온 세상이 보이고 지금 나는 어둠 속으로 물러나 있다 어둠을..

헤이리 방황

경기 북부 가까이에 살고 있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헤이리가 있어서이다 맛집도, 멋집도 풍성하지만 나는 그저 헤이리의 바람 바람이 불어가는 언덕 언덕 위의 나무들 그 일렁임이 좋다 나는, 우리는 종종 헤이리를 걷는다 산책에는 이유도 방향도 일정도 없다지만 헤이리에서는 특히 헤매인다 김영남 화가 무심코 잡은 앵글 하나로 멋진 그림을 만들었다 바람 소리, 그 쓸쓸함을 초록과 꽃들로 장식하였다 하늘을 좁히고 풀밭을 더 넉넉히도 들였다 나의 사진에 담긴 느낌을 풀어내며 그의 그림 속 의미를 듣고 싶다 시월이 오면 함께 막걸리 잔이라도 기울이며 헤이리에 가면 헤이리에 가면 헤아리리 허공을 흐르는 바람결 실려오는 국화꽃 향기 밤하늘 별빛의 숫자들을 헤이리에 가면 헤어지리 사랑이 아닌 사랑 이별이 아닌 이별 그리움..

외로운 길을 지나며

뉴욕을 출발하는 날부터 비가 내렸다 미국 동부, 북쪽의 끝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향하여 500마일을 가는 길 뉴헤이븐, 프로비던스, 폴 리버, 보스톤, 포츠머스, 브런즈웍, 로클랜드, 벨페스트, 엘즈워스 그리고 사우스 웨스트 하버 마을마다, 도시마다 천천히, 일정이 없이 머물렀기에 이름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카디아에서는 얼마나 머무를지 여정이 안개처럼 희미하던 시절 그런 앞날을 내심 즐기던 날 커피 생각으로 들렀던 어느 작은 마을 풀밭 너머 언덕 위의 집을 보던 순간 여행도, 여정도 모두 꿈결이었다 김영남 화가 꿈결을 더 몽환적으로 묘사하였다 덧없이, 뜻도 없이 지나간 날들 그 날들을 불현듯 소환하여 준 그의 그림에 감사한다 외로운 길을 지나며 풍경이 외로워도 인적이 드물어도 가야할 길은 가야할 길 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