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헤, 북쪽의 베니스
운하가 잘 발달된 벨기에의 도시
그저 터벅터벅 걷던 어느 초가을 날
쌓인 일들도
하여야 할 일들도
잊고 떠난 여행지에서
오늘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않으려 하던 날
그 날의 산책은
지금도 포근하기만 합니다
.
.
이명례 화가
그 날, 다리 위에서
내려다 뵈는 작은 집을
그렸습니다
집이 아닌 상점인 듯 하지만
'브뤼헤의 집'으로 이름하였습니다
사진보다
그림이 더 정감이 있고
포근하다는
당연함을 확인합니다
산책
허공에 눈길을 두고
고요에 귀를 기울여요
아, 이만큼이나 왔어요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보이는 건 그림자 뿐
들리는 건 발자국 소리
여기쯤에서 멈출까요
저기쯤에서 돌아설까요
시간을 모르는 오후
계절을 모르는 하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