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출발하는 날부터
비가 내렸다
미국 동부, 북쪽의 끝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향하여
500마일을 가는 길
뉴헤이븐, 프로비던스, 폴 리버,
보스톤, 포츠머스, 브런즈웍,
로클랜드, 벨페스트,
엘즈워스
그리고 사우스 웨스트 하버
마을마다, 도시마다
천천히, 일정이 없이 머물렀기에
이름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카디아에서는 얼마나 머무를지
여정이 안개처럼 희미하던 시절
그런 앞날을 내심 즐기던 날
커피 생각으로 들렀던
어느 작은 마을
풀밭 너머
언덕 위의 집을 보던 순간
여행도, 여정도 모두
꿈결이었다
김영남 화가
꿈결을 더 몽환적으로 묘사하였다
덧없이, 뜻도 없이 지나간 날들
그 날들을
불현듯 소환하여 준
그의 그림에 감사한다
외로운 길을 지나며
풍경이 외로워도 인적이 드물어도
가야할 길은 가야할 길
뒤를 돌아보아도 앞을 바라보아도
외롭지 않은 길이 어디 있겠는가
외롭지 않은 척 웃어도 보겠지만
외로운 것은 외로운 것
그 길에도 꽃은 피고 물은 흐르고
묘지 속의 이들도 편히 누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