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주로
안암오거리 ~ 종각간 버스를 이용하지만
가끔은 성북천변
물길을 따라 걷다가
신설역에서 1호선을 타기도 합니다
물론 그 후로는 종각~인사동~서촌으로의
산책이 이어지고
어느 날, 비가 그친 후
성북천변 퇴근길에서 만난 맨드라미
시골 화단이 아닌
콘크리트 도시
햇빛 가득한 타일벽 아래에
개선 장군인냥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기특도 하여서
카메라 앵글을 잡았는데
구도가 제법,
감히 예술이라 정의하였습니다
.
.
이명례 화가
'감히 예술'을 '진짜 예술'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강한 맨드라미
꽃으로 피기까지의 사연에
귀를 기울입니다
꽃과 나누는 이야기
자연은 이야기를 꽃으로 전한다
뿌리 아래 깊숙한 어둠으로부터
어젯밤의 별빛, 새벽의 이슬 이야기까지
바람 차가운 날, 작은 씨앗으로 떨어져
아래의 어둠, 위의 빛으로 나고 자라서
줄기를 세우고 잎을 열고
꽃으로 피어난 세월 이야기까지
인간사 5감에서
보아서 얻는 소식이 대부분이고
여기에 향기까지 더해지니
꽃이 전하는 이야기 거리가 넘친다
땅 아래 지하수, 하늘 위 은하수
깊은 이야기를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
형형색색 아름다움으로 펼쳐 놓는다
땅으로 낙하한 수많은 씨앗에서
생을 부여잡고 힘겹게 피어난 의지
지하수 아래의, 은하수 위의 이야기들
색깔과 향기만큼이나 서로 다른
아기자기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
더없는 아름다움으로 피기 위해
겪어야 했던 슬프고도 모진 사연들
오늘도 나는 햇빛 아래에서
꽃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빛으로 향기로 바람으로 전하는 말
꽃 그늘아래, 꽃으로 머물고 싶다
삶의 희로애락을 꽃처럼 엮어간다면
언젠가는 한 송이 꽃으로 필 수 있을까
속삭이듯 꽃들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