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숨바꼭질

숨바꼭질 방향도 위치도 가늠할 수 없는 과거와 폐쇄만이 남은 허황한 거리 온기가 그리워지는 시간 비로소 찾을 것은 ‘나’ 현재의 화려함과 군중 속의 서두름에서 드러나지 않던 ‘나’를 찾아 헤매이는 길 진정 무엇을 원하였던가 홀로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드러나는 ‘나’와 드러나지 않는 ‘나’ 둘 뿐인 황량한 거리 외면하듯이 훑어보며 간격을 두고 물어보는데 아직 경계가 남은 듯 선뜻 다가서지를 않네 전부 열지를 않네

솔방죽 길을 걸으며 (제천 환경지, 초록길, 2016년 여름호)

솔방죽 길을 걸으며 아파트 숲 아스팔트 길을 나서 조금 더 걸으면 불현듯 마주치는 그 때 그 자리 그리운 곳이런가 솔방죽 길 시간의 길손이 되어 먼 곳을 보면 산을 너머 고향에서 오는 바람 들을 건너 어린 날을 속삭이는 갈대 들녘 저 편 의림지에 눈길을 두면 다가오는 벗의 목소리 너의 웃음

선술집

선술집 우울한 어둠이 밀려오면 불빛이 그리워 찾는 곳 서서 마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술집이다 하루의 삶에 지친 영혼들 꾸역꾸역 모여들어 서로의 사연을 추렴하는 길 잃은 길손들의 쉼터 온 곳도 갈 곳도 모르고 잠시나마 등을 기대는 곳 우리네 부질없는 삶도 언젠가는 선술집이 아니랴 허무한 불빛에 눈이 부시면 어둠이 그리워 일어서는 곳 오래 머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술집이다

서해안

서해안 서해안에 가면 어머니를 만나지 아궁이 불빛만이 환하던 부엌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던 앞치마 그 찝찔하고도 정겨운 내음, 바람 수도 없이 교차한 세월의 물결 세파에 젖고 다시 마르고 물도 뭍도 아니게 되어버린 사연, 뻘 숱한 한숨과 눈물로 가득 찬 당신만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인 듯 사연 너머로 제쳐둔 그 아득함, 바다 서해안에 가면 어머니를 만나지

사랑은 벨을 울리지 않네 (다솔문학, 동인지, 초록물결 제5집)

사랑은 벨을 울리지 않네 바라보지 마 남 몰래 열어놓은 문 사랑은 현관으로 오지 않네 길을 걷다가 발 아래로 툭 떨어지는 낙엽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맑게 개인 하늘의 무지개 바람 없는 날 오르는 파도처럼 마른 하늘에 울리는 천둥처럼 사랑은 불청객으로 오네 귀 기울이지마 층계를 오르는 소리 사랑은 벨을 울리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