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밤 인사

밤 인사 이제 자야겠어요 일찍 일어나는 이들은 깨어날 시각 몸과 마음을 걸어 다니는 작은 발걸음 그 방황과 속삭임에 밤이 떠나는 줄도 몰랐어요 짙어질 수 없는 어둠 커질 수 없는 혼돈 그래서 몰랐던 거예요 더 짙은 어둠과 더 큰 혼돈이 있다면 밤의 이별을 느꼈을 텐데 그렇게 멈추는 법을 배워가지요 이제 자야겠어요 작은 죽음들을 매일 밤 맞이하듯이 아침이 긴 햇살창을 들고 성큼 다가오기 전에

바람을 보는 법을 알게 되었네

바람을 보는 법을 알게 되었네 걷다 보니 높은 산, 깊은 물보다 더 험한 길 어차피 넘어져야만 하는 길이었음을 알게 된 후에 살다 보니 보이는 사연이야 눈을 질끈 감고 감당했지만 보이지 않아 절절이 겪은 아픔이었음을 알게 된 후에 돌아보니 우연처럼 스치고 떠난 서글픈 인연들 이제 와서 이리도 가슴 시린 정이었음을 알게 된 후에 그날, 그 계절에 그리도 세차게 불었던 바람 그 바람이 여전히 나를 흔들고 있음을 알게 된 후에 하늘을 가는 구름 가볍게 떨리는 들창 바람결에 담긴 옛 이야기들 이제야 나는 바람을 보는 법을 알게 되었네

바다 햇살

바다 햇살 해를 쫓아 떠나간 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높이 오르지 말라고 그렇게 소리쳐 불렀건만 너는 로켓으로 솟았고 온전히 시야를 떠나던 날 예고된 추락이었다 네가 빗방울보다도 작아져 먹구름 아래로 떨어지던 날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깊이 잠겨버린 너는 영영 떠오르지 않았고 끝내 움켜쥐었던 햇살만이 수면에 떠서 일렁이고 있다

막걸리 따는 법 (종로문학, 2016년)

막걸리 따는 법 막걸리를 따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첫 번째는 그냥 따서 위쪽 맑은 술부터 아래쪽 앙금까지 변하는 맛을 보는 거야 어차피 삶의 맛은 살아갈수록 변해가니 두 번째는 마개를 잡고 위 아래를 유지한 채로 휘휘 몇 바퀴를 돌리면 되지 어차피 삶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 세 번째는 흔들고 나서 두 번쯤 길게 병 모가지를 죄면 되지 어차피 삶이란 숨막힐 때도 있어야 하니 네 번째는 흔들고 나서 숟가락으로 병의 대가리를 열댓 번쯤 때리면 되지 어차피 삶이란 아프면서 가는 거야 다섯 번째는 흔들고 나서 그냥 따는 거야 넘치면서 퍼지는 막걸리에 몸을 적시며 어차피 삶의 맛은 눈물 젖을 때 깊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