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 산책 외등 산책 해질녘 혹은 해뜰녘 어스름 무렵 외등 아래를 걷습니다 외등을 만나며 외등이 되며 특히 제주에서는 고즈넉함이 더해집니다 삶은 홀로 서서 그만큼만 비추는 외등입니다 인연도 사연도 외등 아래를 지나갑니다 불빛 아래에 잠시 머물고 멀리 떠나지요 시간도 무심히 지나갑니다 외등은 그 자리에서 그만큼만 비추는데 외등 아래를 걷습니다 작은 등불 아래 홀로 만나고 떠나는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시간도 나그네일 뿐입니다 외등 아래에서는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왕복 왕복 삶은 가고 오는 것 잠시의 머무름도 떠나거나 돌아오기 위한 것 헤어짐과 만남에 연연해야할 이유는 없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떠나기 위해 돌아오니 계절처럼 기억처럼 그저 떠나는구나 더러는 돌아오는구나 생각하면 그 뿐 눈물로 헤어지면 눈물로 웃음으로 만나면 웃음으로 잊혀지게 되니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옛 이야기 옛 이야기 우리 옛날에 '아침 묵었나?'가 인사였을 때 사립문은 새벽에 열고 자기 전에야 닫았지 담장이 낮아 담너머로 음식을 주고 받았지 '친구야! 놀자' 대문간까지 와서 불러댔지 수확을 끝낸 밭고랑이 놀이터요, 축구장이었지 저녁 어스름에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갔지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가로등이 없어도 달빛 별빛이 가슴 속까지 밝혔지 우리 옛날에 '밤새 별일 없었나?'가 인사였을 때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옛날에는 옛날에는 옛날 옛적,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마중을 나오는 설레임이 있었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반가움이 있었지 마주보고 얘기하는 즐거움이 있었지 궁금함이 더 좋은 기다림이 있었지 마음만큼은 부자이던, 옛날 옛적에는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어느 날 아침 어느 날 아침 산새가 울고 솔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침 해는 또 오르고 꽃들은 여전한 어느 날 아침 인적은 없고 시간은 무관심한 어느 날 아침 반갑게 외롭고 기분 좋게 길을 잃은 어느 날 아침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알게 되지 알게 되지 바닷가 파라솔은 철이 지난 후에 한 여름밤의 꿈임을 알게 되고 우리네 인생은 철이 든 후에 한 세월의 꿈임을 알게 되고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6
안부 안부 토요일 아침, 속을 풀러 단골 해장국 집에 들어섰는데 이 시간이면 오시던 노부부 커플 오늘은 할아버지만 혼자이시네 '어르신, 할머니는요?' '지난 달에 먼저 보냈어’ 할머니가 잘라주시던 깍두기 할아버지의 가위질이 서툴러 보여 '제가 잘라드릴까요?' '괜찮아, 이제 익숙해져야지’ 울컥, 뭔가 자꾸만 목에 걸려 반도 채 못 뜨고 일어서는데 식사 후 멍하니 앉아계시는 모습 '모셔다 드릴까요?' '아녀, 테레비 좀 보고 갈래’ 할아버지 마음은 벌써 할머니가 없는 빈집을 들어서시네 숙취 해소하려다가 술 취하고 싶은 아침 '그럼 저 먼저 갑니다’ '그려, 운전 조심혀’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5
아름다운 것들 (다솔문학, 동인지, 초록물결 제5집) 아름다운 것들 나는 알게 되었네 진정 아름다운 것들을 별이 뜨지 않는 밤 연주가 끝난 후의 풍금 열매를 내려놓은 나무 오래 입어 낡아진 옷 울퉁불퉁 오른 돌탑들 포장이 되지 않은 길 그리고, 세월을 겪은 너의 웃음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5
시간 마실 시간 마실 '계세요' 부르면 누군가 맞이할까? 뒤란에 숨은 술래잡기 아이가 상고머리를 삐죽 내밀까 '게 뉘여' 허리 굽은 할머니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방문을 열까 한적한 골목에는 햇살이 홀로 바쁘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