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외등 산책

외등 산책 해질녘 혹은 해뜰녘 어스름 무렵 외등 아래를 걷습니다 외등을 만나며 외등이 되며 특히 제주에서는 고즈넉함이 더해집니다 삶은 홀로 서서 그만큼만 비추는 외등입니다 인연도 사연도 외등 아래를 지나갑니다 불빛 아래에 잠시 머물고 멀리 떠나지요 시간도 무심히 지나갑니다 외등은 그 자리에서 그만큼만 비추는데 외등 아래를 걷습니다 작은 등불 아래 홀로 만나고 떠나는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시간도 나그네일 뿐입니다 외등 아래에서는

옛 이야기

옛 이야기 우리 옛날에 '아침 묵었나?'가 인사였을 때 사립문은 새벽에 열고 자기 전에야 닫았지 담장이 낮아 담너머로 음식을 주고 받았지 '친구야! 놀자' 대문간까지 와서 불러댔지 수확을 끝낸 밭고랑이 놀이터요, 축구장이었지 저녁 어스름에는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갔지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가로등이 없어도 달빛 별빛이 가슴 속까지 밝혔지 우리 옛날에 '밤새 별일 없었나?'가 인사였을 때

안부

안부 토요일 아침, 속을 풀러 단골 해장국 집에 들어섰는데 이 시간이면 오시던 노부부 커플 오늘은 할아버지만 혼자이시네 '어르신, 할머니는요?' '지난 달에 먼저 보냈어’ 할머니가 잘라주시던 깍두기 할아버지의 가위질이 서툴러 보여 '제가 잘라드릴까요?' '괜찮아, 이제 익숙해져야지’ 울컥, 뭔가 자꾸만 목에 걸려 반도 채 못 뜨고 일어서는데 식사 후 멍하니 앉아계시는 모습 '모셔다 드릴까요?' '아녀, 테레비 좀 보고 갈래’ 할아버지 마음은 벌써 할머니가 없는 빈집을 들어서시네 숙취 해소하려다가 술 취하고 싶은 아침 '그럼 저 먼저 갑니다’ '그려, 운전 조심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