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뜻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고 맘 알아주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많은 사람 사는 세상 남의 큰 고통보다 내 작은 상처가 먼저이고 남의 굶주림보다 내 군것질이 먼저인 사람 사는 세상 부모라고 자식이라고 행여 부부라고 그 아픔을 알까 그 괴로움을 느낄까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의지하면 할수록 서운함이 커져가고 헌신하면 할수록 헌신짝이 되어가는 사람 사는 세상 세상이 그래도 나는 달라야겠지 넘어진 나를 다시 세우며 하루를 더 버티는 사람 사는 세상

사계의 삶

사계의 삶 소년은 봄 미지의 세상을 향해 피어 오르지 향기는 어디든 가고 꿈도 먼 곳을 향하지 청년은 여름 녹음은 더 이상 짙어질 수 없지 에너지는 넘쳐 모두에게 힘을 주지 중년은 가을 결실을 주고 뒷모습을 바라보지 소명을 다하는 날 홀로 쓸쓸히 돌아서지 노년은 겨울 삶도 죽음도 아닌 날들이 지나지 멀리 떠날 준비를 하며 기억들은 잊혀가지

빛나는 슬픈 이야기

빛나는 슬픈 이야기 봄이 오는 날, 거리를 지난 햇살이 창을 통하여 테이블에 내려앉는데 슬픈 이야기를 덤덤히도 하고 있는 너의 머리칼에도 부드럽게 닿는데 빛은 이야기를 슬쩍 엿듣다 오크색 술병 속으로 숨어버리는데 술병을 기울이면 그 씁쓸한 맛 슬픈 목넘김, 창밖의 해는 기우는데 문을 나서는 힘없는 너의 뒷모습 무엇이 위로가 될까, 망설이는데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눈이 부셔서 고개를 깊이 묻는데 눈을 감아도 안으로 머무는 빛 빛나는 슬픈 이야기로 장식되는데

비 오는 밤, 외등 아래

비 오는 밤, 외등 아래 빛이 떠난 자리, 어둠이 채우는데 차마 떠나지 못한 빛 한 조각 어둠을 두르며 비에 젖고 있네 언젠가 그 밤처럼, 내 모습처럼 산동네로 오르던 돌담에 기대어 진정 갈 길을 찾고 있던 날 하염없이 젖어들던 빗물이여 깊고 차갑게 두르던 어둠이여 한 발을 디디려 몸을 세워도 모르는 길은 전부가 두려움 돌아오는 법을 걱정하였네 결국은 외등 아래 길을 따랐네 모르는 길은 길이 아니라며 떠나면 돌아와야 한다며 초라한 명분을 찾던 날 어찌 그리도 어리석었던가 저 외등의 빛은 그 날의 빛 내리는 비는 그 날의 비 디딜 곳을 찾지 못한 걸음은 오늘도 외등 아래 헤매이고 있네

비가 내리는 날

비가 내리는 날 가을 낙엽이 지듯 비가 내린다 5윌의 녹음은 짙어가는데 희망은 기약없이 지고 있는가 겨울을 견뎌야 피는 수선화였다 아픔을 겪지 않은 희망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랴 아픔이 두려워 돌아섰기에 처음부터 절망이었다 후회한들, 흘러간 빗물인 것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기약 없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 빗물마저 고이는 아스팔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