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일상의 위로

일상의 위로 그가 많이 아프고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일상적인 말을 줄 뿐이었지 과로하지 말라고 피로는 바로 풀라고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그러고 보니 꽃이 예쁘다고, 하늘이 파랗다고 하는 말들도 일상이었지 우리는 모두 그렇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공감을 얻으며 살아가지 외롭거나 힘들 때 눈길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며 찾는 것들도 일상일 뿐이지 우리는 단지 그 일상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믿고 싶을 뿐이지

일몰 스케치

일몰 스케치 하늘을 넘은 해가 지쳐 바다 위에 누우면 세상은 색을 잃은 채 노을빛 캔버스에 검은 윤곽만을 남기고 해가 물에 잠길수록 점점 다가오는 어둠 무심히 바라보던 나 작은 점으로 남아 한 켠에 정지되고 온통 검붉은 세상 물결만이 움직이는데 저 물결도 시간이 가면 멀리로 떠날 것임을 알면서도 바라만 보고 엉거주춤 일어서면 작은 윤곽만 바뀔 뿐 더 큰 의미가 있으랴 바다를 붉게 태우는 노을 여전히 멀리 있고

이른 봄, 남산에 올라

이른 봄, 남산에 올라 우리 남산을 오를 때 서울 생활이 고달팠지 남산에 오른 저녁 하나 둘, 등불을 켜는 성냥갑 같은 집들을 보며 살아가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 생각했지 남산에 봄이 오면 겨울을 잘 넘겼다는 대견함이 있었지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걱정거리보다는 즐거운 일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 우리 동네에서는 남산이 보였고 남산에서는 우리 동네가 보였지 바람을 따라 나왔지만 서둘러 등불 아래로 돌아가고 싶었지 우리 세월이 흘러 남산을 다시 오르니 그 동네가 어디였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네 추워서 따뜻하던 그 등불을, 그 웃음을 이제 찾을 수가 없네

이른 봄, 낙엽을 거두며

이른 봄, 낙엽을 거두며 겨우내 묵혀둔 낙엽을 거두는 날 두툼한 겨울옷도 한 겹을 벗는데 맨땅이 드러나듯 속살도 드러나고 이제는 봄이 무조건 와야 한다 기다리는 계절이 멀지 않은 이유는 분명 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계절도 세월도 순리대로 오가는데 의복을 챙기듯이 마음도 다스렸을까 기다리면 될 것을 서둘러 다가섰고 초조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푸르던 잎새도 가는 법을 알고 낙엽 아래 새싹도 때를 알고 오는데

우정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반평생 살아보니 세상에 빚진 일들이 참으로 많네 눈을 감고 잠시만 돌이켜봐도 축복을 주신 고마운 이들이여 어머니 나를 낳으셨고 아버지 나를 키우셨고 스승은 가르침을 주셨고 아내와 딸아이는 부족한 내게 끝도 없는 사랑을 주었네 친구와 동료와 이웃들이 있어 삶을 무난히 꾸려갈 수 있었네 이름 모를 농부 덕분에 즐거운 밥상을 맞이하였고 계절 과일을 먹을 수 있었으며 먼 바닷가의 어부는 식탁에 신선한 해산물을 놓아주었네 얼굴도 모르는 직공이 따스한 의복을 보냈으며 만난 적 없는 목공이 책을 읽을 책상을 만들어 주었네 몸이 아플 때는 의사 선생님이 마음이 아플 때는 산사의 스님 성당의 신부님이 어깨를 빌려 주셨네 앞에 보이는 시내버스의 기사님 덕분에 차창가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며 즐거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