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한줌 바람이 커튼을 흔들면 (종로문학, 2019년)

한줌 바람이 커튼을 흔들면 한줌 바람이 커튼을 흔들면 창가에 머물러봐 그 바람 어디에서 와서 무얼 전해주는지 기억하여야 할 이야기들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봐 누군가 부르는 소리인지 내리는 비가 빗소리를 전하듯 한줌 바람에도 이유가 있어 커튼이 흔들리면 창밖을 내어다 봐 잊혀진 누군가가 먼 길을 돌아오고 있는지 눈을 감아봐 어디쯤 오고 있는지

한잔의 오늘

한잔의 오늘 한 잔 채워주세요 오늘 일들을 들이키도록 간직할 것은 머금고 버릴 것은 뱉어내도록 하루를 또 넘겼네요 알 수 없는 어둠을 하루하루 지워가고 있죠 살아온 흔적과 의미 어둠을 모두 지운다 해도 결국은 모를 거예요 그 허무함에 가슴을 치겠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태어남이 준 숙명인 것을 그래서 술이 필요해요 오늘 일들을 견딜 수 있도록 간직할 것은 머금고 버릴 것은 뱉어내도록

하루 계절

하루 계절 한 해에도 사계가 있지만 하루에도 사계가 있네 한 해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돌아가지만 하루의 계절에는 순서가 없네 가을, 그 외로움 뒤에 봄의 미소가 오기도 하고 겨울, 그 혹한 뒤에 여름의 혹서가 오기도 하네 울다가 보면 웃을 날도 있겠지 견디다 보면 계절은 바뀌겠지 계절의 변화를 가늠할 수 없어 뒤죽박죽 걸치는 사계의 옷가지들 오늘도 어설픈 채비를 하고 한치 앞을 모르는 하루를 나서네

하늘빛 흐린 날

하늘빛 흐린 날 하늘빛 흐린 날, 물가에 서있네 물이 흘러가는 곳이 어디쯤인지 또렷이 볼 수가 없네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가겠지 그저 생각할 뿐이네 생은 늘 흐린 풍경이네 세월을 따라 흘러가고 언젠가는 끝에 이르겠지 막연한 생각뿐이네 날마다 홀로 조각배를 띄우네 날이 저물면 기슭에 닿기를 바라면서 조각배에서 보이는 흐린 풍경들 더 먼 곳은 내일이 되어야 볼 수 있다네 비가 내리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오늘을 저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