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계절 이별

계절 이별 너를 보낼 준비를 한다 네가 가면 낙엽은 지고 찬바람은 불어 오겠지 쓸쓸히 차가운 저녁을 보내겠지 불타는 정열이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너의 품 안에서 열기에 땀방울에 맘껏 젖었다 너로 인해 해바라기는 더욱 뜨겁게 피었고 매미는 피를 토하며 울었다 너는 너무도 강하여 모든 것들은 너와 하나가 되든지 너를 영영 떠나든지 선택할 뿐이었다 이제는 너를 보낼 준비를 한다 굳바이~ 너, 여름이여

겨울 추위

겨울 추위 추위가 밖에서만 오는 줄 알았네 불을 밝혀도 몸을 덥혀도 추위가 사그라지지 않을 때 안에서 오는 추위를 느낄 수 있었네 내 작은 마음이, 삐뚤어진 심사가 피와 살을 차갑게 식혀 체온을 뚝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을 겨울에는 마음이 얼어 더 춥고 여름에는 열불이 나서 더 덥고 사람 사는 일, 겪어가는 고통에 계절 탓, 남 탓을 하기보다는 내 탓일 때가 더 크고 많다는 것을 따뜻한 방에서 떨며 알 수 있었네

11월 25일은 비

11월 25일은 비 11월 25일, 비가 내린다 엊그제 내려서 쌓인 눈 위로 구석구석 눈을 녹이며 아직은 가을이야, 11월이야 시위라도 하듯 눈을 헤치며 늦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주말, 성급히 캐롤을 켜는 레코드 가게의 유리창에 겨울이야, 손을 호호 부는 여인네들의 우산 위로 주룩주룩 빗물이 흘러내린다 떠나기 싫은 가을의 눈물 보내기 싫은 여인의 눈물 빗물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때늦은 우산을 펴야 하나 가을 노래를 들어야 하나 11월 25일, 비를 보고 있다

혼돈

혼돈 먼 곳을 보네 오랜 이야기만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옛이야기 한 때는 젊음도 있었지 그 젊음에 어울리는 술과 노래와 웃음도 있었지 강을 따라, 시간을 따라 모두 떠나가고 나도 먼 길을 떠났지 그리움도 잊을 듯 살아온 격렬한 일상들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기억하여야 하는지 지쳐 돌아와 털썩 주저앉는 허허로운 몸짓 늘 변함없는 속도 강이여, 시간이여 이 정도면 충분할 듯도 한데 뭘 더 어쩌자는 건지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 먼 곳을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