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글과 술

글과 술 내게는 글과 술이 같아 글을 쓰는 동안 혼돈들이 정리가 되고 때로는 잊혀지기도 기억의 저편으로 미루어지기도 하지 술에 취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야 마음을 드러내기도 미루기도 하니 이렇게 마주앉아 나눌 수 있는 벗이 어디 있겠어 어디에 있든, 무슨 생각을 하든 최고의 벗을 부르는데 구석진 탁자 몇 장의 종이 몇 장의 지폐로 충분하니 얼마나 큰 행운인지

글과 나

글과 나 글을 쓰다가 보면 끝없이 빠져들고는 하지 그럴 때는 글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유일한 벗이 되고 심지어, 내가 되기도 하지 나의 소멸이 두려워 글을 내 쪽으로 끌어내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어가고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다 결국은 모두 잠기게 되지 이렇게 쓰여진 글 온전한 내가 되겠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른 나, 그리고 글 둘 중 하나는 온전한 거짓말쟁이가 되지

그림

그림 그림을 볼 때 창 밖의 풍경으로 느끼지 액자 프레임 너머로 또 다른 내가 있다고 그 아이가 낯설지만은 않은 그 풍경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기도 하지 가쁜 숨을 쉬며 더 멀리 달려갈 곳을 바라보기도 하지 그림의 물감들이 방울방울 올라 몸을 적시고 젖은 몸이 무겁게 그림 안으로 잠겨 나도 그림이 되어갈 무렵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흠칫 깨어나지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샌가 그림 밖으로 나와있는 거야

귀가

귀가 시골에서는 호롱불 창가를 향해 걸었지 어머니의 기다림 따뜻한 불빛이었어 읍내에서는 골목 가로등을 따라 걸었지 집으로 향하는 길 믿어 의심치 않았어 도시에서는 거리의 불빛들을 따라갔지 길이 아닌 곳 그 곳에도 불빛이 있었어 알게 되었어 불빛들이 길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잃게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편히 쉴 곳은 밝은 곳이 아니라 조금 어두운 곳이라는 것을

공항 라운지

공항 라운지 분명 돌아올 여정임에도 가슴이 먹먹한 이별 느낌은 뭔가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던 아내와 딸의 얼굴이 서운하게 멀어져 가는 기분은 뭔가 미처 살갑게 표현하지 못한 말들이 아쉬워지고 조금 더 따습게 대하지 못한 행동이 뉘우쳐지고 떠날 때마다 다가오는 반성 늘 타던 비행기 늘 가던 출장지이건만 돌아오면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야지 되뇌어보는 공항 라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