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빛나는 슬픈 이야기

빛나는 슬픈 이야기 봄이 오는 날, 거리를 지난 햇살이 창을 통하여 테이블에 내려앉는데 슬픈 이야기를 덤덤히도 하고 있는 너의 머리칼에도 부드럽게 닿는데 빛은 이야기를 슬쩍 엿듣다 오크색 술병 속으로 숨어버리는데 술병을 기울이면 그 씁쓸한 맛 슬픈 목넘김, 창밖의 해는 기우는데 문을 나서는 힘없는 너의 뒷모습 무엇이 위로가 될까, 망설이는데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눈이 부셔서 고개를 깊이 묻는데 눈을 감아도 안으로 머무는 빛 빛나는 슬픈 이야기로 장식되는데

비 오는 밤, 외등 아래

비 오는 밤, 외등 아래 빛이 떠난 자리, 어둠이 채우는데 차마 떠나지 못한 빛 한 조각 어둠을 두르며 비에 젖고 있네 언젠가 그 밤처럼, 내 모습처럼 산동네로 오르던 돌담에 기대어 진정 갈 길을 찾고 있던 날 하염없이 젖어들던 빗물이여 깊고 차갑게 두르던 어둠이여 한 발을 디디려 몸을 세워도 모르는 길은 전부가 두려움 돌아오는 법을 걱정하였네 결국은 외등 아래 길을 따랐네 모르는 길은 길이 아니라며 떠나면 돌아와야 한다며 초라한 명분을 찾던 날 어찌 그리도 어리석었던가 저 외등의 빛은 그 날의 빛 내리는 비는 그 날의 비 디딜 곳을 찾지 못한 걸음은 오늘도 외등 아래 헤매이고 있네

비가 내리는 날

비가 내리는 날 가을 낙엽이 지듯 비가 내린다 5윌의 녹음은 짙어가는데 희망은 기약없이 지고 있는가 겨울을 견뎌야 피는 수선화였다 아픔을 겪지 않은 희망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랴 아픔이 두려워 돌아섰기에 처음부터 절망이었다 후회한들, 흘러간 빗물인 것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기약 없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 빗물마저 고이는 아스팔트에

밤 인사

밤 인사 이제 자야겠어요 일찍 일어나는 이들은 깨어날 시각 몸과 마음을 걸어 다니는 작은 발걸음 그 방황과 속삭임에 밤이 떠나는 줄도 몰랐어요 짙어질 수 없는 어둠 커질 수 없는 혼돈 그래서 몰랐던 거예요 더 짙은 어둠과 더 큰 혼돈이 있다면 밤의 이별을 느꼈을 텐데 그렇게 멈추는 법을 배워가지요 이제 자야겠어요 작은 죽음들을 매일 밤 맞이하듯이 아침이 긴 햇살창을 들고 성큼 다가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