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가을비 거리

가을비 거리 가을비는 밤새 축축하였던 거리를 흠뻑 적시는데 가을비에 젖은 마음은 깊이 가라앉는데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닌 잊혀진 날의 모습이 되어 여기이던가 저기이던가 헤매이는 거리 만날 이도 떠날 이도 없는 텅 빈 거리에서 어디를 향해 이리도 분주하게 움직이는가 걷다가 보면 마주치리 돌아보면 알게 되리 행여 멈춘들 무엇하리 부는 바람 내리는 비가 등을 더 멀리 밀어낼 것을

탈고를 위한 단상

탈고를 위한 단상 과거는 그리워할 수는 있어도 돌아갈 수는 없는 곳 미래는 그려볼 수는 있어도 앞서 갈 수는 없는 곳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들은 그 때의 나에게 맡겨두고 지금의 내 이야기를 담자 그리움도 좋고 꿈이라도 좋다 가볍게 글랜싱하는 기분으로 100편 정도만 추려본다면 두께도 무게도 적당하여 모바일 시대에도 걸맞겠고 어떤 이야기들을 고를까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은 어중간한 깊이의 이야기들 벗에게 하는 편한 이야기들 배열은 어떻게 할까 '가나다' 순으로 하여야겠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먼저 나오게 되니~

해장국

해장국 하루 또 하루 인생길에 몸도 마음도 굳어지거든 해장국 집으로 가자 숫자 큰 하얀 달력과 달밤 호랑이 액자가 걸린 누런 벽지 옆 탁자에 앉아 해장국 국물을 뜨자 사연을 우려낸 국물에 설움을 공기밥으로 말아 눈물 반 헛웃음 반으로 훌훌 들이키자 해장국에 풀어지는 것이 숙취뿐이랴 꽁꽁 동여맨 심사도 삶에 찌들은 감성도 지쳐 충혈된 눈망울도 멍든 가슴 속 응어리도 훌훌 풀어보자

해운대

해운대 동해가 남해를 만나고 바다가 구름을 만나는 곳 나는 무엇을 만나고 있을까 바람이 되어 떠난 인연이 파도가 되어 돌아오는가 잊혀진 목소리를 싣고 오는가 그렇게 불어온 바람이었다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 마디를 울리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바람이었다 가슴을 다 내어 보여도 무심히 사라지는 바람이었다 얄궂도록 햇살이 좋은 날 백사장 위를 나는 물새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무심히 멀어지는 파도 돌멩이 한 개를 던져 넣는다 바다는 더욱 잘게 부서진다 슬픔은 웃음 너머로 와서 노을보다 짙게 물드는데 선술집을 찾아가는 걸음이 허허로이 길을 잃는다 달맞이 고개를 내려온 바람이 돌아가라며 등을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