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541

겨 울 에, 나 는

겨 울 에, 나 는 구두미 마을 태기산을 넘으며 그 날인 듯 구두미 마을에 들렀네 마을은 고요하고 바람만이 지나고 있었네 들국화 무리가 일렁이던 들에는 하얀 눈이 펼쳐 있었네 봄 꽃이 예쁘던 고목은 쓸쓸이 겨울을 넘기고 있었네 멀리 처마너머, 봄을 기다리는 집이 겨울 산 아래에 쉬고 있었네 겨울 산, 겨울 나무들은 겨울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그 때 그 모습은 여전했고 그 때 그 모습은 변해갔네 태기산을 넘으며 그 때 그 날인 듯 구두미 마을에 들렀네 회상 아득한 날 하늘 푸르던 그 날 웃음과 애환이 있던 곳 이제는 모두가 없는 시간에 쓸려간 폐허가 되어 저무는 회상으로 머물러 있다 멀리 떠나간 인연 홀로 낡아간 흔적 먼지가 되어버린 사연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 되어 찾지 않는 곳 한 켠에 머물러 있다 그 ..

추웠던 날, 북한강으로 갔다

추웠던 날, 나는 북한강으로 갔다 북한강을 향할 때는 시우리를 지난다 시우, 時雨 때를 맞추어서 내리는 비 이 곳은 늘 젖어 있다 이 곳에 오면 마음도 늘 젖어 든다 고향을 닮은 마을 그 높이의 산이 있고 그 깊이의 개울이 있고 긴 밭이랑이 있고 산 아래 옛 집들이 있고 스치듯 지나는 마을에 서서 먼 곳 어딘가를 본다 잊었던 무언가를 본다 시우리에서 보이는 고향은 그리움으로 젖어 있다 . . 그리고, 겨울강에 이른다 겨울의 강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그 곳에는 8 계조의 흑백 풍경만 있었다 바람이 멈추고 새가 날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은 정지 되었다 나는 그 곳에서 시간마저 정지된 공간을 보았다 멀리서 오는 빛도 가까이서 흐르는 물도 고요의 혼돈 속에서 멈칫거리고 있었다 자연인가, 장식인가 풍경들은 ..

남한강, 그리고 제주 올레 8코스

남한강ᆢ 그리고, 제주 올레 ㆍ ㆍ 남한강 겨울, 남한강은 모두가 떠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든 이야기들이 잊혀진 풍경이다 겨울, 남한강은 다시 오지 않을 사람 다시 안지 못할 인연 다시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가 흘러간다 . . . . 올레 8코스 하늘은 바다와 땅을 하나로 이으려는 듯 햇살과 눈, 그리고 바람을 그 길에 한껏 뿌리고 있었다 대평포구에서 논짓물을 지나 예래에 이르는 바닷길을 간다 다가올 날을 안식하는 고깃배들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검은 석상들, 그리고 등대 계절을 잊은 흔들림, 유채꽃 무리 슬픈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의 울음 잊고 향하고픈 광야를 본다

함마메트, 튀니지

함마메트, 튀니지 투니스에서 80km, 기차로는 한시간 거리.. 아프리카 기차는 예고도 없이 한시간을 늦고, 더디게 달려 시간 가늠이 어렵다 좌석번호도 그냥 무시되고.. 사람 내음 풀풀나는 곳 해변은 아름답고, 하늘이 높은 곳 풀도 꽃도 자연도 나도 그저 배경일 뿐, 드러나지 않는 곳 기분 좋게 잊혀져 간다~ 시간과 공간의 프레임, 밖으로 가자 오지 않는 기차 흐르지 않는 구름 흔들리지 않는 나무 일렁이지 않는 그림자 마주치지 않는 눈동자 물결 오르지 않는 바다 다가오지 않는 문명 그리고 멈칫거리는 시간 사람없는 길 방향없는 곳 그리고 나는 걷는다 고요ᆢ그리고 고요 기차는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영영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인생이고 숙명이기에 늘 기다리고 만나고 이별하였기에..

무겁도록 깊은 사색과 함께

무겁도록 깊은 사색과 함께 마실 주점은 런던에 있고 자존심으로 홀로 꿋꿋이 마실 술은 런던 프라이드이다 런던 공습에서도 살아남은 런던 프라이드(바위취)처럼 런던 프라이드 비내리는 밤 보스톤에서는 사무엘 아담스 프라하에서는 필스너 우르켈 런던에서는 런던 프라이드이다 런던에서는 런더너가 되어야하고 런더너는 런던 프라이드를 마셔야 한다 페일 에일의 캐스크 비터 비어 적갈색의 무겁고 순한 맛 차갑지만은 않은 온도 신속한 거품의 소멸 런던에서는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홀로 세운 프라이드로 런던 프라이드를 마셔야 한다 비내리는 밤 적갈색의 가로등 불빛 적갈색으로 데코된 펍의 창가에서 적갈색 캐스크 비어를 마셔야 한다 . . 그리고 글을 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외롭거늘 그 외로..

파리, 축축하게 비가 내리던

파리, 축축하게 비가 내리던, 아직은 봄이 완연하지만은 않던 그래서, 다소 쌀쌀하고 을씨년스럽던 휴일 구석진 방에서 눅눅해진 바게트와 식은 커피로 하루를 버티려다가 조금은 답답해져서, 하오 창밖으로 뵈는 성당, 기도라도 하려 들렀다 기도로 온통 채우고 죄의 사함을 듬뿍 받은 후의 허기 구석진 방에서, 다시 눅눅해진 바게트와 식은 커피로 채우던 날 생 피에르 성당, 몽마르뜨 언덕 위 사크레 쾨르 대성당 곁에 있다 세월이 깊어지듯 영혼도 깊어지도록 하소서 . . 비가 내릴 듯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질 곳을 가리지 않듯이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다스리는 이와 섬기는 이 가까이 있는 이와 멀리 있는 이 모두에게 빗물같은 사랑을 주소서 공평하게 사랑을 받도록 하소서 . . 생 로랭 성당, 지나는 길에 마주친~ 내..

교토에서ᆢ 산책을 하였다

교토에서ᆢ 산책을 하였다 작은 땅을 더 없이 고귀하게 만드는 멋 곱고 소박한 마음들을 존경하며~ 작은 공간에서 큰 행복을 가꾸는 일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다 한 뼘 땅에도 꽃 넝쿨이 오르고 한 줌 바람에도 꽃 향기가 멀리 퍼진다 나의 공간을 가꾸고 다듬는 일 모두의 공간을 행복하게 하는 배려이다 주택가를 벗어나면, 절, 신사, 전통 주택 모두가 경주같다 참으로 사랑하는 도시 ᆢ . . 교토에 오면 시간이 움직인다 천년의 고도 그 시간을 지나면 깊고 오랜 맛 그리운 과거 교토에 오면 공간이 움직인다 천년의 고도 그 공간을 지나면 깊고 오랜 맛 그리운 경주 이름 모를 도시에 달이 걸리고 흐르는 강물에 등불이 떠가네 건배! 우리 오래도록 왔구나 석별의 정 나누는 못잊을 밤에 가는 이 남는 이가..

빈에서는 '카페 하벨카'~ 를 찾는다

빈에서는 '카페 하벨카'~ 를 찾는다 나만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10년의 간격을 둔 글과 사진들ᆢ 엮어보았다 . . 언젠가, 오후 반나절을 멍~ 때린 적이 있다 홀로인 이들, 죽치고 있는 이들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커피 두세잔을 마시고 잠시 졸기도 하고, 잔뜩 글도 쓰며 멈춘 시계의 작은 바늘 대략 반바퀴쯤 돌았겠지~ 느낄 무렵 함께 들어온 빛이 떠날 무렵 허리를 털고~ 일어선 적이 있다 하루를 보낸 나른함, 가벼워진 발걸음과 함께 (얼굴이 나온 아주머니께는 양해를 구하고 촬영~) 카페 하벨카 모더나이즈된 빈의 쇼핑가 그것도 화려한 그라벤 한 켠에 숨은 듯 고전이 있다 헨리 밀러와 분리파 화가들의 이야기 클림트와 코코슈카의 장식 오래된 포스터와 낡은 액자들 언제부터인가 정지한 시계 오래된 듯..

'질문', '감사' 그리고 '기도'

LA에서 그저 찾아가서ᆢ그저 머물렀다 기도ᆢ기도들 ᆞ ᆞ LA, 성 빈센트 바오로 성당, 100년이 다 되어가네‥ 멈추자ᆢ들르자, 회개의 기회가 넉넉하지는 않으니~ 파란 하늘에는 자카란다 파란 하늘, 파란 꿈~ 너는 자카란다~ 나는 작가란다 . . 오래 전, 성스런 이들을 위한 경건함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지만ᆢ 만만치 않다 사하여 주소서. 지난 회개 후 지금껏 지은 죄, 그리고 이번 회개 후 다음 회개시까지 지을 죄를 . . 머무름ᆢ그리고 기도들ᆢ ᆞ ᆞ [질문] 그대에게로 가는 길은 몇 갈래입니까 외길 뿐입니까 나의 기도를 품으십니까 하늘로 올리십니까 내가 그대에게로 가는 건가요 그대가 나에게로 오는 건가요 여기쯤이면 얼마나 가까이 온 건가요 입증될 수 없음은 제로입니까 무한입니까 틈나는 대로 ..

겨울 하늘

삼청동길 오랜만에 미세 먼지 없는 날 하늘이 파랗다 들꽃처럼 발 디딜 곳을 가리지 않고 그저 푸른 하늘만을 향하여 높이 피어오르던 시절 그때 그 아이 언제부터인가 눈앞에 보이는 곳을 향하여 모질게 달려온 세월 길 위에 두고 온 그때 그 아이 힘겹게 따라오다가 지쳐 주저앉고 말았는지 어디쯤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그때 그 아이 낙엽이 지면 그 모습이 그리워지고 멈추어 서면 멀리서라도 다가올 듯한 그때 그 아이 ㆍ ㆍ 겨울 하늘 겨울날 파란 하늘은 파란 물감을 가득 담고 있죠 산새라도 날아올라서 메아리라도 위로 올라서 쨍하고 깨어지면 파란 물감이 쏟아지겠죠 세상은 온통 파란 캔버스 투명한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긴 막대기를 들고 하얀 데생을 할 거예요 나무도 길도, 마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