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겨 울 에, 나 는

BK(우정) 2022. 3. 2. 20:35

겨  울  에,  나  는

 

 

구두미 마을

 

태기산을 넘으며

그 날인 듯 구두미 마을에 들렀네

 

마을은 고요하고

바람만이 지나고 있었네

 

들국화 무리가 일렁이던 들에는

하얀 눈이 펼쳐 있었네

 

봄 꽃이 예쁘던 고목은

쓸쓸이 겨울을 넘기고 있었네

 

멀리 처마너머, 봄을 기다리는 집이

겨울 산 아래에 쉬고 있었네

 

겨울 산, 겨울 나무들은

겨울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그 때 그 모습은 여전했고

그 때 그 모습은 변해갔네

 

태기산을 넘으며

그 때 그 날인 듯 구두미 마을에 들렀네

 

 

회상

 

아득한 날

하늘 푸르던 그 날

웃음과 애환이 있던 곳

 

이제는 모두가 없는

시간에 쓸려간 폐허가 되어

저무는 회상으로 머물러 있다

 

멀리 떠나간 인연

홀로 낡아간 흔적

먼지가 되어버린 사연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 되어

찾지 않는 곳 한 켠에

머물러 있다

 

그 날 그 자리에 다시 서면

잊혀진 땅에서 일어서는

회상들이여

 

멀리 흩어진 웃음 소리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데

그리운 이들은 어디로 갔나

 

폐허에 부는 바람

마른 갈대는 눕고

회상은 일어서고 있다

 

.

.

 

 

북악을 넘어ᆢ 출근

덕수궁, 정동길을 지나 퇴근

 

어느, 겨울날

 

 

 

북악, 겨울을 걷다

 

집 뒤의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북악으로 이어집니다

겨울의 북악은 고요합니다

모든 생명들은 정지하여 있습니다

그 고요아래를 걷습니다

 

지나간 것은 무엇이며

다가올 것은 무엇인지

떠나간 이는 누구이며

마주친 이는 누구인지

 

하루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며

겨울을 걷는 길

길어지는 산 그림자는

홀로 걸어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눈이 덮힌 언 땅, 그 정지된 길

언젠가는 꽃이 피고

산새의 지저귐이 흐를 길

 

지나간 것들,

멀리있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북악을 지납니다

완연한 겨울입니다

 

 

 

나무는

계절에도, 차가운 눈에도

순응하며

 

숲길에서의 사색

 

그저 살아 볼 일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오만일 뿐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고

눈물이 있어야 웃음이 있다.

 

거역을 모르는 나무도

비바람에 꺾이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는 사람이 되어

꺾이지 않고 세파를 헤쳐갈 수 있으랴

 

작은 나무는 덤불을 이루고

높은 나무는 하늘을 향하듯이

두 발은 뿌리가 되어 땅을 딛고

두 팔은 가지가 되어 하늘을 안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같은 인생

안고 부대끼며, 더러는 원망도 하고

진한 눈물에 웃음을 말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그리 살다가 홀로

집을 향하듯 돌아설 일이다

 

잔치가 끝난 뒤, 바지춤을 추리며

붉은 눈으로 일어서는 황혼이 되는 날

그 때까지는 그저 살아 볼 일이다.

 

이른 퇴근

덕수궁

한적한 계절, 겨울

 

 

덕수궁에서

 

사막 가운데에 오아시스처럼

도심 가운데에 덕수궁이 있다

도심의 오아시스 덕수궁에서

도시인의 가슴을 적셔보는데

정관헌의 빛, 석조전의 바람이

빛 아래에 그대로 머물라 한다

바람 속에 그대로 머물라 한다

 

 

 

 

정동길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정동길

 

사랑하는 이들에게 화분을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광화문에서 꽃집을 하는 잘생긴 젊은이가

내가 원하는 화분을 원하는 이들에게 보내준다

한 달에 한 번쯤 결제일이 오면, 마음이 참 즐겁다

잘생긴 젊은이, 아기자기한 화초도 즐거움이지만

광화문 가는 길,  정동길을 걷기 때문이다

 

 

 

정동길을 걸으면, '광화문 연가'가 생각이 나고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정동길이 생각이 난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을 지나고

조그만 교회당, 이영훈 추모비, 정동극장,

그리고 이름이 좋은 카페 '길들여지기'의 카푸치노

 

중명전, 신아일보 별관을 들르고, 카페 거리를 걷고

이화박물관, 구러시아공사관, 프란체스코 수도원ᆢ

광화문 꽃집을 향하는 길은 모두가 꽃으로 온다

그 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별빛으로 빛나는 밤에

 

그리고, 이영훈 노래비

멈춘다

 

그의 노래/BK

 

사랑이 지나가면

기억이란

그녀의 웃음소리뿐

나의 슬픈 이별 이야기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들려오는 애수의 노래

 

옛사랑

난 아직 모르잖아요

서로가 슬픈 사랑의 노래

 

가을이 오면

빗속에서

다시 만나리

휘파람으로 흐르는 광화문 연가

 

 

엊그제, 그의 묘소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