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아내의 생일

아내의 생일 겨울을 견디어 꽃이 되었나 꽃이 되고파 봄을 기다렸나 인동초로 살아 온 날들 그 아련함을 아내는 웃음으로 담는다 오늘은 태어난 날의 축복보다는 살아온 날들의 축복 프리지아 꽃다발과 잘 자란 딸아이를 보며 오래 전 만난 소녀는 아내의 웃음을 짓는다 밝은 웃음을 마주하고 맑은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며 기원한다 살아갈 날들의 축복을

사립문을 열며 (은혜의 땅 아름다운 금성면, 2018년)

사립문을 열며 어릴 적 들과 산에 꽃피는 계절이 오면 아버지는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나가 놀아라' 하시고는 온종일 우리 삼 남매를 찾지 않으셨다 이 날만큼은 숙제도 없었고, 심부름도 없었고 하물며 밥 묵자는 말씀도 않으셨다 낮은 담장 밖 가까이 펼쳐진 들판, 멀리 보이는 내와 얕은 산들은 하나 가득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마당에는 까닭 없이 조는 강아지와 머리를 들지 않는 병아리들만 한가하고 툇마루에는 보자기 덮인 소반만 종일 우리를 기다리고 봄에 취하여, 검은 눈 휑하니 저녁 놀 따라 돌아온 방안에는 삼남매에게 자리를 내어준 아지랑이만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