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첫사랑 (K-Light, 2018년 1월)

첫사랑 사랑이 사랑인 줄을 알았을 때 그녀를 태운 꽃가마는 고개 마루를 넘고 있었다 그녀가 냇가에서 빨래를 할 때 조약돌을 던져 물방울로 치마를 적시면서도 그녀가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 몰래 다가가 물통에 버드나무 이파리를 뿌리면서도 그녀가 툇마루에서 다듬이질을 할 때 괜한 마음에 담 너머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는 몰랐으리라 그녀가 미운 듯 눈을 흘길 때에도 그녀가 작은 손을 낮게 치켜들 때에도 그녀가 알 듯 모를 듯 웃음을 지을 때에도 그것이 사랑인지는 몰랐으리라 그녀가 연지곤지에 족두리를 쓰던 날 눈물 가득한 눈이 마주쳤을 때 벗들과 동동주 몇 잔 걸치고 뭔지 모를 서운함에 괜스리 뒤돌아보고 헛웃음을 지을 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고무신을 양손에 들고 숨이 차도록..

이별 앞에서 (K-Light, 2019년 4월)

이별 앞에서 제생병원 807호실에서 당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열흘이 채 안 남으셨다기에 가슴은 뛰고, 눈물은 하염없이 흐릅니다마는 여윈 모습의 당신은, 어린애처럼 잠만 잘도 잡니다 꿈 속에서 가야 할 길을 둘러보고 있으신지요. 지나 온 길을 돌아보고 있으신지요. 나도 눈을 감고 꿈을 꾸는 듯, 생각을 하는 듯 우리가 지나 온 길을 돌아봅니다 선생과 제자라는 연으로 만나 오순도순 25년을 걸어왔습니다 내 첫사랑의 생일에, 화려한 파티를 마련한 이도 내 연구를 위해, 전자현미경을 밤새워 수리한 이도 내 취업을 위해, 표구를 들고 민실장을 찾아간 이도 나를 믿고, 공부 잘하는 제자들을 기꺼이 위탁한 이도 나를 아끼어, 곁으로 불러 후배들을 지도하라 한 이도 내가 자랑스러워, 가슴의 훈장처럼 과시하고 싶어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