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954

주점 가는 길

토론토, 주점 골목들을 기웃거렸죠 ᆞ ᆞ 주점 가는 길 낯선 도시에 가면, 나는 주점을 찾아가요 서툰 지도로 주점을 향하는 길 거리의 풍경 사람들은 스치죠 즐거운 마음이라면 더 넓게 더 행복하게 볼 수 있잖아요 주점에 들어서면 맛난 비어를 고르죠 창가에 앉죠 빛의 색깔에 비어를 맞춰가요 하오의 바이스, 페일 에일 해질녘의 IPA 어둠이 오면 다크 비어로 같은 분위기라면 더 맑게 더 따뜻하게 즐길 수 있잖아요

여전히, 경계

토론토에서 아바나로 넘어갔다 석양을 곁에 두고~ . . 500년, 카리브해의 역사 럼과 재즈, 시가, 헤밍웨이의 도시ᆢ 먼저 한 일은, 그저 걷는 것이었다 골목을, 거리를 ᆞ ᆞ 여전히 꽃이 피었나요, 새가 우나요 거기도 그랬어요, 그 날도 그랬어요 꽃이 피어요, 새가 울어요 여기도 그래요, 오늘도 그래요 . . ᆞ ᆞ 경계 사물도, 사람들도 다른 각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그를 온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몽상의 허구

호수가 있어서 좋고, 호반을 거닐어서 좋다 이국의 호수들 캘리포니아 깊은 곳, 킹스 캐년과 세콰이어 국립공원 안쪽 1.5킬로 고도의 흄 호수가 있다 고요하고 잔잔한 곳, 일몰이 아름다운 곳 평화로운 은둔지에 해가 지고 있다 호수에서는 해가 호수너머로 진다 호수너머로 해가 지면 호수와 하늘은 하나가 된다 호수도 하늘도 짙고 푸른색 노을을 보며 나는 노을빛 창가에 앉는다 노을이 호수 끝에 걸리면 노을과 나는 하나가 된다 노을도 나도 저물어가는 솔로 ᆞ ᆞ 캐나다 로키, 밴프의 호수들 산 위, 만년설이 녹은 물 차갑고도 청량한 물빛이 곱다 나 여기 머무르고 있음을 아는 이 없으리 나 너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아는 이 없으리 잊으려 깊이 들어가도 비 그친 후 버섯인 듯 축축함을 열고 자라는 그리움 지우려 눈을 감..

울란바토르와 근교를 다니다

도착한 날은 한잔 그리고 깊은 수면~ 시차를 위하여 . . 재개발이 한창인 울란바토르, 먼 산아래 판자촌으로 낯선 도시에 가면 뒷골목, 마을부터 찾는다 그들의 삶이 있기에 흙바람 아래 물도 귀한 곳, 지나는 세월만 머무르는 곳 걸어본다. 천천히 느린 오후 삶의 그늘 아래 지친 듯 들어서면 아직도 나누지 못한 이야기 마주치지 못한 눈동자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어머니의 깊은 한숨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 누이의 흐린 눈물 마른 바람은 홀로 흙길을 지나고 그 목소리도 눈물도 멀리 실려가는데 못본 듯 돌아서면 다가오는 얼굴들 못들은 척 외면하면 그리운 이야기들 . . 그리고, 일하는 날 아침, 가볍게ᆢ일정을 생각하며 이국의 아침은 늘, 설렘을 준다 . . 잠시의 휴식, 대학의 캠퍼스 저녁의 파티 새로이 만나는 ..

순례자의 산책

어농 성지, 이천 해는 서산을 넘는데 인적은 없고 새들만 나무 십자가 위를 오르내린다 촛불을 봉헌한다 . . 나무 십자가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지고 간 이를 생각합니다 그를 생각하며 이름 모를 풀꽃까지도 위하고 사랑하리라 다짐합니다 아는 이보다는 모르는 이를 위해 찾은 곳보다는 찾지 못한 곳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저 십자가 그늘 아래 더불어 피고 지는 루드베키아 빛과 바람 아래 출렁이며 거친 땅에서도 행복한 망초꽃 무리 그 만큼의 은혜 그 만큼의 공유로도 행복한 것을 성모여, 오늘도 나는 가진 것은 미루어 두고 더 가질 것을 찾아 나서지는 않았는지요 얻기 위한 기도로 당신에게 집착하지는 않았는지요 저녁 어스름이 오면 밀려오는 반성과 후회 어둠을 밝히려 작은 촛불 하나, 당신께 놓습니다 ㆍ ..

프로뱅에게

프로뱅에게 차창밖으로 마을이 보였어 기차에서 내렸어. 바람이나 쐬려구 지붕들 위로 하늘이 정갈하게 빛났어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였는데 이런 걸 예기치 못한 행운이라고들 하지 나이를 먹은 나뭇가지들은 오래된 담벼락에 벽화처럼 기대었지 남은 틈, 여백들을 이끼가 초록으로 칠했어 담벼락들만 보아도 중세의 갤러리야 평생 한번쯤 열릴까, 궁금한 낡은 문들에는 담쟁이 넝쿨이 출렁거리고 잠시 걸터앉은 돌의자 주위에서는 나 홀로 모던이었어 아, 나도 중세의 시간 속에 묻히고 싶어 석벽을 가진 성채는 세월의 크기를 헤아리는 듯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관조하였을까 나의 짧은 시간 적지 않은 오류들이 가슴을ᆢ 무겁게 하네 이대로 기울어지고 싶도록 회개의 잔, 십자가를 보며 건배를 하여야겠어 넘기는 술이 성수가 되도록 하소..

위안

언제이던가, 6월 이 무렵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를 향하였다 산으로 가면 나무가 된다 빛을 안고 하늘로 오른다 산으로 가면 물이 된다 순응하며 계곡을 흐른다 산으로 가면 바람이 된다 잎새와 풀잎을 연주한다 산으로 가면 영혼이 된다 몸은 두고 마음이 걷는다 그리고, 우린 더 북동쪽으로 호수가 있는 마을까지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술을 사고, 호수 옆, 숲 아래~ 이름 모를 마을에 은둔하였다 . . 멀리 떠나왔고 깊이 들어온 날 세상 모르게 잊혀져 보자 네가 아는 나도 내가 아는 나도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시간도 공간도 오지 않는 곳 숲 속 한 그루 나무로 서서 바람에 흔들리고 이슬에 젖을 뿐 한 줄기 바람결 닿은 적 있으랴 한 방울 밤이슬 젖은 적 있으랴 잃을 건 잃고 줄 건 주고 본성만 남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