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을 열며 (은혜의 땅 아름다운 금성면, 2018년)
사립문을 열며 어릴 적 들과 산에 꽃피는 계절이 오면 아버지는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 '나가 놀아라' 하시고는 온종일 우리 삼 남매를 찾지 않으셨다 이 날만큼은 숙제도 없었고, 심부름도 없었고 하물며 밥 묵자는 말씀도 않으셨다 낮은 담장 밖 가까이 펼쳐진 들판, 멀리 보이는 내와 얕은 산들은 하나 가득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마당에는 까닭 없이 조는 강아지와 머리를 들지 않는 병아리들만 한가하고 툇마루에는 보자기 덮인 소반만 종일 우리를 기다리고 봄에 취하여, 검은 눈 휑하니 저녁 놀 따라 돌아온 방안에는 삼남매에게 자리를 내어준 아지랑이만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