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나는 변하지 않았네

나는 변하지 않았네 나는 변하지 않았네 40년 전, 소년일 적에도 모범생은 아니라고들 하였을 뿐 나는 변하지 않았네 30년 전, 청년일 적에도 철이 들지 않았다고들 하였을 뿐 나는 변하지 않았네 20년 전, 장년일 적에도 어른은 멀었다고들 하였을 뿐 나는 변하지 않았네 10년 전, 중년일 적에도 세상을 모른다고들 하였을 뿐 나는 변하지 않았네 중년을 훌쩍 넘어서는데 중년의 품격이 없다고들 할 뿐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네 세상과 시간이 변하면 나도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네 지금껏 삶이 아름다웠으니 여전히 삶은 아름다울 테니

나는 떠나리

나는 떠나리 모두들 떠나던 날, 나는 머물렀지 꿈과 희망은 머물러도, 기다려도 다가오리라 생각했어 빈 집들에 기억을 들어 앉히고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기억들과 옛이야기를 나누었지 넓은 들판에는 바람과 구름을 초대하였어 강물에는 시간의 배를 띄었어 한껏 뛰며 어울릴 때마다 하늘을 더 파랗게 물들이던 노래 소리, 웃음 소리 덧없이 자라는 잡초들을 고운 화초로 가꾸어갔어 꿈과 희망은 살며시, 모르는 새에 다가와 나를 흠뻑 채웠지 그렇게 시간은 흘렀어 노을이 더 붉게 물들던 날 모두들 돌아오고 있었어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 휑한 모습들로 마치 어제 떠난 이들처럼 익숙하게 여장을 풀고, 숨어들어가듯이 텅 비었던 집들을 꼭꼭 채웠지 집 안에 머물던 기억들은 밖으로 나와 하늘 높이로 사라져갔어 이제 놀이는 끝난 거야..

글과 술

글과 술 내게는 글과 술이 같아 글을 쓰는 동안 혼돈들이 정리가 되고 때로는 잊혀지기도 기억의 저편으로 미루어지기도 하지 술에 취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야 마음을 드러내기도 미루기도 하니 이렇게 마주앉아 나눌 수 있는 벗이 어디 있겠어 어디에 있든, 무슨 생각을 하든 최고의 벗을 부르는데 구석진 탁자 몇 장의 종이 몇 장의 지폐로 충분하니 얼마나 큰 행운인지

글과 나

글과 나 글을 쓰다가 보면 끝없이 빠져들고는 하지 그럴 때는 글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유일한 벗이 되고 심지어, 내가 되기도 하지 나의 소멸이 두려워 글을 내 쪽으로 끌어내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어가고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다 결국은 모두 잠기게 되지 이렇게 쓰여진 글 온전한 내가 되겠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또 다른 나, 그리고 글 둘 중 하나는 온전한 거짓말쟁이가 되지

그림

그림 그림을 볼 때 창 밖의 풍경으로 느끼지 액자 프레임 너머로 또 다른 내가 있다고 그 아이가 낯설지만은 않은 그 풍경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기도 하지 가쁜 숨을 쉬며 더 멀리 달려갈 곳을 바라보기도 하지 그림의 물감들이 방울방울 올라 몸을 적시고 젖은 몸이 무겁게 그림 안으로 잠겨 나도 그림이 되어갈 무렵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흠칫 깨어나지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샌가 그림 밖으로 나와있는 거야

귀가

귀가 시골에서는 호롱불 창가를 향해 걸었지 어머니의 기다림 따뜻한 불빛이었어 읍내에서는 골목 가로등을 따라 걸었지 집으로 향하는 길 믿어 의심치 않았어 도시에서는 거리의 불빛들을 따라갔지 길이 아닌 곳 그 곳에도 불빛이 있었어 알게 되었어 불빛들이 길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잃게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편히 쉴 곳은 밝은 곳이 아니라 조금 어두운 곳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