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겨울 추위

겨울 추위 추위가 밖에서만 오는 줄 알았네 불을 밝혀도 몸을 덥혀도 추위가 사그라지지 않을 때 안에서 오는 추위를 느낄 수 있었네 내 작은 마음이, 삐뚤어진 심사가 피와 살을 차갑게 식혀 체온을 뚝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을 겨울에는 마음이 얼어 더 춥고 여름에는 열불이 나서 더 덥고 사람 사는 일, 겪어가는 고통에 계절 탓, 남 탓을 하기보다는 내 탓일 때가 더 크고 많다는 것을 따뜻한 방에서 떨며 알 수 있었네

11월 25일은 비

11월 25일은 비 11월 25일, 비가 내린다 엊그제 내려서 쌓인 눈 위로 구석구석 눈을 녹이며 아직은 가을이야, 11월이야 시위라도 하듯 눈을 헤치며 늦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주말, 성급히 캐롤을 켜는 레코드 가게의 유리창에 겨울이야, 손을 호호 부는 여인네들의 우산 위로 주룩주룩 빗물이 흘러내린다 떠나기 싫은 가을의 눈물 보내기 싫은 여인의 눈물 빗물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때늦은 우산을 펴야 하나 가을 노래를 들어야 하나 11월 25일, 비를 보고 있다

혼돈

혼돈 먼 곳을 보네 오랜 이야기만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옛이야기 한 때는 젊음도 있었지 그 젊음에 어울리는 술과 노래와 웃음도 있었지 강을 따라, 시간을 따라 모두 떠나가고 나도 먼 길을 떠났지 그리움도 잊을 듯 살아온 격렬한 일상들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기억하여야 하는지 지쳐 돌아와 털썩 주저앉는 허허로운 몸짓 늘 변함없는 속도 강이여, 시간이여 이 정도면 충분할 듯도 한데 뭘 더 어쩌자는 건지 커피 한 잔, 담배 한 모금 먼 곳을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