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에는 잊고 싶었다 흔들리는 꽃 허공으로 오르는 낙엽 눈을 감으면 밀려오는 풍경 더불어 흔들리며 잊고 싶었다 마저 잊으려 술을 마셨다 세차게 흔들리는 기억 내가 나를 잊고 있었다 네가 나를 잊었듯이 내가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건 잊혀지고 너만이 홀로 남아있었다 넘어지는 술병 허공으로 오르는 얼굴 바람 부는 날에는 울고 싶었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미포에서 미포에서 해운대의 한 켠 미포에서도 끝자락 선술집 창가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모습의 노인 그가 권하는 횟감에 부산 소주를 곁들인다 바다 끝에 꼬리만 걸려 저무는 해 물길에서 지쳐 돌아온 고깃배 무리를 옅게 비추는데 오늘, 또 하루는 이렇게 지나고 있다 잔을 넘길수록 어둠은 밖에서 재촉하는데 '너를 따라 나서면 세상과 멀어지잖아' 한마디 하고 싶어도 주섬주섬 일어설 수밖에 미닫이 문을 나서면 비린 내음, 찬 바람 골목 뻐근한 허리 달빛마저도 버거운 어깨 오늘, 또 하루는 미포에서 떠나고 있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문답 문답 종일을 일에 몰두하다가 하루가 저무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루만큼 저물어간 삶의 모습도 보인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답을 얻기 위하여 하루를 또 살았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빈 마음, 빈 몸으로 떠날 줄 알면서 하루 또 하루 걸어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멀리 (플라스틱 사이언스) 멀리 가까이보다 멀리 보고 싶어요 곁에 있는 이가 마음을 아프게 하면 멀리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며 넓게 이해하고 싶어요 가까이보다 멀리 보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이 어렵고 힘이 들면 멀리 내가 가야 할 길을 보며 넓게 생각하고 싶어요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떠나버릴까 떠나버릴까 이대로 떠나버릴까 몸도 마음도 텅 비운 채로 구름이 가는 구름의 길 바람이 가는 바람의 길 그 길을 따라 이대로 떠나버릴까 두고 온 건 두고 온 대로 잊고픈 건 잊고픈 대로 그저 그렇게 두고 이대로 떠나버릴까 스스로 만든 그물에 스스로 갇혀있는 것 떠나고 나면 몸은 흙, 마음은 허공 차마 놓지를 못하는 것 못내 잊지를 못하는 것 흙으로 허공으로 뿌리고 구름의 길을 따라 바람의 길을 따라 이대로 떠나버릴까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뒷골목에서 뒷골목에서 그 곳이 여기런가 살아온 흔적 겪어온 애환들이 삶의 화석이 되어 딱딱하게 굳어있는 곳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바뀌어도 외면하는 그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축축한 땅의 버섯인 듯 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곳 오늘 하루도 시간의 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일상 그 곳이 여기런가 어느 바람 부는 날 힘에 겨운 듯 빨랫줄을 지탱하는 여윈 바지랑대 같은 곳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8.01
동생을 배웅하며 동생을 배웅하며 터미널 대합실같은 명절이 오면 잠시 웃음짓고 떠나야지 먼 곳에서 하루하루 살다가 잠시 웃음 지으려 돌아와야지 터미널 대합실같은 명절이 오면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