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954

흐름

왜 모든 시간을 가치있게 써야만 한다는 그 강박관념에 길들여져 있을까? 어느 무료한 날, 긴 의자에 누워 평온히 들려오던 비틀즈 그 흥얼거림이 더 기억에 남는데 무료함, 멍 때림의 가치를 자꾸 놓치고 있다 하루의 가치를 놓친 24시간의 멍 때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데 시간이 느릿느릿 동반을 한다 비행기를 놓쳤으니~ 기차를 타러 가야지~ 흐름/BK 많은 것들은 절로 주어지더라구요 실제로 이룬 것들은 그리 많지가 않아요 파도를 헤치며 고군분투, 역행하였다지만 흐름에 맡기면서 순응하였다면 더 넓은 세상을 보았을까요?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었을까요? 궁금해도 들리는 소식만 듣지요 그리워도 연락은 않고 기다리지요 글은 절로 나올 때 써내려가지요 떠나고플 때 나서고, 머무르고플 때 멈추지요 배 고플 때 먹고, ..

이별하며

여정의 끝, 이별 함부르크에서 한다 ㆍ ㆍ 이별하며/BK 이별은 혼자서 하는 거예요 떠난 후에도, 흐릿하게 잊혀질 때까지는 이별이 아니예요 이별을 시작하며 주점을 향해 떠나요 익숙한 지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벽을 따라서 전해 와요 자세를 잡아요. 나름의 멋은 있어야 하니 자리를 잡아요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외롭지 않은 구석 테이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죠 안주는 넉넉해야 해요 술도 술잔도 종종 다녀가야 해요 시간은 잊죠 그리고 잊을 것과 담을 것이 나누어지죠 웅성거림은 점점 작게 음악 소리는 크게 들려와요 지난 여정들이 하나, 둘 지나가요 우린, 몰두한 뒤에 소멸해야죠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예요 결과는 영영 오지 않을 지도 몰라요 과정은 까맣게 잊혀지지도 너무 선명하..

알을 깨다

헬싱보리에서 헬싱괴르로~ 스웨덴에서 덴마크, 페리로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또, 먼길을 달려가겠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 '데미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마주쳐야만 하는 경계를 넘어 나아가는 것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것 한 권의 책, 책장을 여는 것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 새로운 여행지로 이동하는 것까지, 모두 경계를 넘는 것 알을 깨다/BK 누군가 내게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것이 무언지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마주치게 되는 숱한 경계들을 지나갈 줄 아는 지혜라고 답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과 용기만큼이나 관용과 여유, 양보와 절제도 필요하다고 경계들은 제각각 다르니 어..

경계

오슬로~ 에서 예테보리~ 로 가는 길 노르웨이~ 스웨덴 국경, 다리를 지난다 스웨덴쪽 작은 카페에는 옛이야기가 있고 창 너머로 비 내리는 강, 국경이 보인다 경계/BK 웃으며 마주보는 우리 사이가 경계이고 봄꽃과 여름의 녹음 사이가 경계이다 마중을 나가는 마을 어귀가 경계이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파도로 이어진다 경계는 서로가 만나는 곳, 이어지는 곳 이상한 이들만이 이상한 경계를 만든다

어느 도시의 사람

2021년 7월 21일 오후, 울산과학기술원~ UNIST 회의 회의 시간 앞 뒤로~ 여유를 두었다 울산역에서 UNIST까지는 산길을 피하면~ 약 10키로 가면서 절반을 걷고, 오면서 절반을 걷고 ㆍ ㆍ 10시 서울역 출발~ 12시 20분 도착 울산역 곁에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있다 출발하자마자 공원~ 500년 보호수 아래에서 잠시 쉬고 태화강과 합류하는 하천길을 따라~ 그리고, 태화강변 강너머의 마을 의자 커플 묘지도 커플 성당~ 성모 알현 고속도로 아래로~ 내 키가 2.2미터는 안되니까 이어지는 길 풋풋한 풍경 길은 계속 이어지고 마침내 절반 거리~ 밥집 도착 국수로 점심 그리고 택시 콜~ 도착~ 3시 회의~ 한시간 회의를 하고 걸어 내려온다 작은 저수지 참깨인지 들깨인지~ 여튼 깨꽃~ 참께꽃이다 ..

주점에서

예테보리 보리~ 도시라서 맥주 맛이 좋네 반지하 주점, 비숍의 팔~ 낮은 곳으로 임하여 주님의 품 속에서 마신다 주점에서 반지하의 주점이 좋아요 반쯤은 묻히고 싶은 거예요 적갈색 조명, 촛불도 좋겠어요 타오르다가 꺼지는 운명 쯤은 알고, 살아가야겠죠 몇잔을 주문하였지만 특히, 블랙 옥토버의 날이에요 시월은 왜 검었을까요 슬픈 비밀이죠 1980년대의 가을, 시월 어느 날 지금껏 흉터로 남아있죠 다른 길은 없는 줄 알았어요 길이 아닌 곳으로도 걸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반지하에서 살겠어요 모든 것이 절반만 드러나도록

모스크바의 목로주점

모스크바의 목로주점/BK 비가 내려야 어울린다 눈이 내리면 더 좋았을 것을 얻으러, 찾으러 오는 곳이 아닌 버리려, 잊으려 오는 도시 오늘은 비가 내린다 오늘은 꿈을 버리고, 잊는다 이루지 못할 꿈 채 남지않은 시간이 희망마저도 앗아간 꿈 이제는 창 밖으로 떠나는 꿈 허무한 풍경과의 작별 반평생 가슴 속 응어리가 눈길 한 번 주고는 빗속으로 사라진다 멀어지는 꿈과 비워지는 술잔 떨어지는 별과 부스러지는 낙엽 그리고, 또 그리고 기울어지는 나

모스크바의 주점에서

백야~ 10시가 넘어야 땅거미가 느릿느릿 찾아오는 도시 비 오는 밤, 스산한 바람 모스크바의 그늘진 한 켠 선술집에서의 술잔은 처연하면서도 감미롭다 세르게이 예세닌~ 천재적인 서정 시인이자 양극성 장애자 푸른 눈동자, 금발의 수려한 외모 이사도라 덩컨이 사랑한 남자 비극적인 삶~ 그리고 술의 벗~ 오늘 밤은 예세닌~의 시로 대신한다 내 생각을 넣어, 조금 바꾸었다 목로 주점의 모스크바 - 세르게이 예세닌 그렇다! 이제는 결정된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는 일이 없게 나는 고향의 들판을 버리고야 말았다. 이제는 날개 같은 이파리들로 미류나무가 머리 위에서 소리를 내는 일은 없으리 내가 없는 동안 나지막한 집은 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힐 것이고 늙은 개는 이미 죽어버렸다 구불구불한 모스크바의 길거리에서 나 또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