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 954

가을에 나는, 늦가을 나는

가을에, 나는 지도 밖으로 나서며 시간을 먼저 보낸다 '자연은 한번도 예술을 동경한 적이 없다' 자연 자체가 고귀한 예술이므로 특히, 이 계절에는~ 늦가을, 나는 이별과 소멸을 아는 이 고귀한 계절과 어울린다 낙엽, 시드는 꽃 장식의 꽃, 의미의 과실을 선뜻 내려놓는 나무들 고독, 반성과 허무 그 고귀함에도 잊은 듯, 잊고 살아온 언어들 멀리 보기보다는 나를 보는 계절 너를 보기보다는 너를 그리워하는 계절 떠나온 고향 사라져간 청춘 매력있는 맛보다는 깊은 맛에 푹 빠져버리는 계절 곱게 피어나기는 쉽다 곱게 떨어지기는 쉽지 않아서 11월, 깊이 들어간다 낙엽처럼, 낙화처럼 고운 소멸을 배우려 늦가을, 나는

가을 도피

강으로 갈까? 길로 갈까 북한강변의 드라이빙 마을 곳곳에 가을의 향연 텅 빈 운동장에는 가을만이 빗자루도 낙엽을 즐긴다 다시, 마을로 차는 멈추고 강변을 걷다 카페 멈춤과 생각 다시 걷다 사람없는 곳 짙은 커피 다시 움직인다 옛 교회당 다시 멈춤 생각들 또, 움직인다 더 북쪽으로 가을 도피 가을이잖아요, 늦가을 그냥 떠날래요 떠나지 않으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깊어서, 무거워서 그냥 소멸되어버릴까 두려워요 늦가을에는 내가 내가 아니어요 바람에 쓸리고 낙엽따라 아득히 떨어져요 계절이, 한 해가 또 이렇게 가고 있잖아요 강으로 갈래요 변치않는 흐름을 보려 들판으로 갈래요 사정없이 변하는 세월을 보려 그냥 떠날래요 가을이잖아요, 늦가을

그리움

J&D 양조장 타이베이에서 60여키로 떨어진~ 이란현, 구석?~ 에 있다 갈 때는 기차, 올 때는 버스로 편도 2시간 가까이를 꾸역꾸역 찾아간 이유는 션한 수제 맥주들, 그리움 덕분이다 메뉴에 있는 모두~ 를 맛본다 그리움 그리우면 힘든가? 그리움마저 없다면 더 힘들 것을 그리움에 찾거나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날들 먼 풍경, 수채화가 되어 창문 너머 안개 드리워진 숲이 되어 아련히 다가오는, 너 그리움이여 떨어져 있는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자 손 닿는 곳, 눈길 닿는 곳을 지나 옅은 마음 닿는 곳 그 너머까지

그 날, 그 길

Yilan, 이란~ 타이베이에서 50여키로 남(동)쪽 명칭은 원주민 중 하나인 카발란(Kavalan)족에서 유래~ 그래서 카발란 위스키, 양조장도 있다~ 기차를 타고ᆢ한시간 반 쯤 어디를 갈까?~ 공부부터 하고~ 산과 온천, 호수도 있다지만 거리, 농촌ᆢ시골길을 간다~ 양조장을 향하여~ 그 날, 그 길 우리 모두에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지 초록이어서 싱그럽고 파랑이어서 눈 부시던 날 우리, 그 때 약속한 '언젠가'는 오지 않았어 '영원히'도 없었지 빛나는 시절의 꿈 그저 사라져간 목소리였지 이미, 지나온 길 그 길에 머무르고 있을 뿐 초록은 초록으로 파랑은 파랑으로 다시 돌아서야 마주할 수 있어 언제였던가 여기쯤이었던가 '영원'은 없고 '순간'으로만 남은 날

단수이를 걷다

단수이~ 를 걸었다 시원한 바닷 바람, 해변의 카페 일본풍의 좁은 골목길 네덜란드, 일본을 거쳐 3백여년전부터 지탱하여온 옛 건물들 붉은 벽돌의 길과 집들 적당한 미학, 예술미를 갖춘 상점들 바다도 바람도 푸르다 단수이를 걷다 일본에 온 줄 알았어요 그대로 보존된 마을 밉다고 해서 지워야만 할까요 간직하면서 그 날을 되새겨야 할까요 나는 후자예요 지운다고 잊혀지지는 않죠 덜 부끄러워지지도 않아요 우리도 언젠가는 지워지겠죠 파도에 쓸리는 모래 위 글씨처럼 모두가 지워지면 기억은 누가하나요 아이들에게 남겨줄 이야기가 없잖아요 교훈이 없잖아요 일본이 아닌, 대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