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 굽이치는 강 강은 흐른다. 내가 좋아하는 강은 굽이쳐 흐른다 강은 구비구비 돌아 흐르면서 더러는 그 안에 설움도 담고 남모를 사연도 담는다 강이 곧게만 흐른다면 크고 광활하게만 흐를 뿐 남모를 설움과 사연은 어디에 담으랴 인생도 사랑도 구비구비 흘러야 그 맛이 난다 굽이치는 ..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국민학교 추억 (은혜의 땅 아름다운 금성면, 2018년) 국민학교 추억 우리는 즐거웠지 교실에서 유리창너머로 맑은 웃음이 퍼져나가던 날 웃음 다발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닿던 날 잎을 떠난 바람이 타지 않는 그네와 태극기를 높이 흔들던 날 깃발의 일렁임이 이승복 어린이 동상에 햇살의 무늬를 만들던 날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 상고 머리 위에 반짝이던 날 우리는 즐거웠지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꽃비 내리던 날 꽃비 내리던 날 하늘 맑은데 꽃비 내리던 날 꽃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던 날 서러운 마음에도 돌아앉은 등에도 봄눈 같은 꽃비는 펄펄 내리는데 더없이 아름다운 사라짐이여 꽃으로 살다가 꽃잎으로 떠나자 그렇게 그렇게 다짐을 하던 날 그렇게 그렇게 꽃비에 젖던 날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고해 고해 1. 어차피 돌아서야 할 길을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인가. 바람에 이는 낮은 먼지들 속에서도 나는 길을 잃는다. 어림 짐작으로 다시 시작한 행로는 얼마나 될까. 돌아갈 곳은 잊혀지고, 다가갈 곳은 보이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촉각을 더듬어도 만져지는 곳은 비어있는 곳. 어떤 온기도..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겨울밤, 우사단길을 걸으며 겨울밤, 우사단길을 걸으며 외로움이 깊으면 빛이 될까 외로움이 더 깊어지면 별이 될까 그 별, 쓸쓸한 골목길에 외등 하나로 떠 올라 저기 저 산아래 불빛보다 더 멀리 빛날까 더 오래도록 빛날까 낡은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걷는 길 기울어진 처마마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별이 걸리..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검정 고무신 검정 고무신 달리기에는 양손에 쥐고 목을 축이려 물도 담고 물을 채워 송사리도 넣고 벌을 낚아채어 빙빙 돌리고 열매를 따려 높이 던지고 트럭으로 접어 흙도 나르고 영 할 일이 없으면 신었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간이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간이역에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는 이미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영영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숙명이고 인생이기에 늘 기다리고 만나고 이별하였기에 간이역에는 바람이 지나고 지붕 위로 구름도 흘러가는데 왜 오지 않는 기차를 기약 없이 기..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가을 우체국 가을 우체국 가을이 오는 날, 우체국 앞 플라타너스 길을 지나면 눈길이 우체국 문을 향한다 편지를 쓰고 싶기도 하고 편지가 와 있을 듯도 하고 흰색과 빨간색의 현관 저기 보이는 작은 문을 열면 멀리서 온 절절한 기다림과 멀리로 갈 애달픈 그리움이 꽁꽁 채워진 우편 행랑들 가을 바..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
가을에 내리는 눈 가을에 내리는 눈 가을에 내리는 눈은 강원도 봉평에서 내린다 가을에 내리는 눈은 푸른 잎새들 위로 내린다 가을에 내리는 눈은 옷은 적시지 않고 가슴을 적신다 가을에 내리는 눈은 여인네들에게는 화사함으로 사내들에게는 그리움으로 내린다 가을에 내리는 눈은 허생원과 동이의 사..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