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빈집에게

빈집에게 너는 늘 여기에 있구나 지난 시간들을 품고 행여 문이라도 열릴까 귀를 기울이고 있니?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린 날 마당을 쓸고 꺾인 풀잎들을 세우던 나를 잊지 않고 있니? 나뭇가지들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겨울에는 눈이 덮이고 그렇게 추억도 쌓여간 날들 이제는 빈 뜰에 잊혀진 계절로 놓여 있는데 너를 두고 멀리 희미해져 가는데 나는 떠났어도 너는 여기 있구나 홀로 계절을 맞이하며

비와 눈물

비와 눈물 비 내리는 날에는 슬픈 노래를 불러주세요 저마다 살아오면서 슬픈 사연은 있잖아요 희미해지고, 혹은 잊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까이로 불러내어 빗물처럼 흐르게 해요 목소리마저 젖은 그대여 어느 노래를 부를지 더는 망설이지 말고 슬픈 노래를 불러주세요 남들 모르게 울 수는 없죠 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눈물인지 빗물인지 유리창으로 얼굴로 주룩주룩 흘러내리도록 뜨거운 눈물인지 차가운 빗물인지 울고 있는 그대만이 알 수 있도록 비 내리는 날에는 슬픈 노래를 함께 불러요

비 내리는 아침

비 내리는 아침 비 내리는 아침, 창 가에 서면 떠날 생각은 않고 기다리고 있지 숱하게 어긋났던 인연들이 쓸쓸한 웃음으로 돌아와 톡,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 창 밖,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소리 비 내리는 아침, 창가의 이야기 커피 한 모금으로 잊혀질까 눈길 몇 번으로 돌아설까 커튼을 닫고 다시 누워도 윙윙, 귓전에 울리는 소리 멀리로 빗물이 흘러가는 소리

비 내리는 날, 차창가에서

비 내리는 날, 차창가에서 커피와 담배가 어울리듯 비와 차창가도 나름 어울리지 이런 날, 시 한 편 쓰지 못하면 감히 시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날 내키는 대로 쓰지 않고 단어와 어휘를 따진다거나 괜스레 눈을 감고 생각이라도 한다면 감히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빗방울이 차창에 닿아 아래로 뒤로 흘러내리듯 닿는 대로 느끼는 대로 편하게 써내려가야 글맛이 나지 이런, 벌써 다 써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