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나무 다리 외나무 다리 북악 산책길의 외나무 다리 일몰 아래에서의 쓸쓸함 어느 그리운 이를 기다리기에 서야 할 나무가 길게 누웠나 어느 인연을 맺으려 잎도 꽃도 버린 모습이 되었나 어느 날 이 곳을 그리운 이가 지날까 어느 날 이 곳에서 인연의 꽃이 필까 돌아보면 그 날은 멀기만 한데 일몰 아래로 내리는 어둠 오늘도 쓸쓸한 외나무 다리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온전한 행복은 없다 온전한 행복은 없다 살아가면서 온전한 행복을 바라지 마라 온전한 행복은 없다 바다도 이따금씩 비에 젖고 태양도 가끔은 구름에 가리우며 지구도 기울어서 돌아간다 하나님도 아들을 십자가에 걸었다 지금 웃고 있는 모든 이에게 크건 작건 불행은 있다 행복의 영원한 동반자는 불행 행복이 불행보다 조금 더 크면 그 순간이 행복이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오늘 일정 오늘 일정 약속을 하면 시간을 빚지고 고백을 하면 마음을 빚지고 빚을 지고는 갚지도 못하고 평생 허덕이다가 가는 인생 "나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약속을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방법 그런대로 무난히 살아왔으니 세상 두 쪽 날 일이 아니라면 오늘의 일정은 오늘 아침에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옛생각 옛생각 걷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저기 나무 아래로 낙엽이 떨어지고 있네 낙엽이 지는 자리에 한 때는 꽃이 피어 있었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의자가 놓여 있었지 오래도록 빈 의자로 외로이 놓여있었네 더 오래 전 그 의자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네 흰머리가 희끗한 채 조용히 뜨개질을 하며 가끔 안경 너머로 나를 보고 웃음을 짓곤 했었지 그보다 더 옛날에 우리는 그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그네도 탔지 해맑은 웃음이 초록 잎새들을 흔들며 하늘로 파랗게 오르던 시절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의 뒤안길이네 저기 나무 아래로 그늘이 지고 있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영산강 영산강 영산강은 멀리서 보는 강 코스모스의 흔들림을 건너 갈대 무리의 서걱임을 지나 못내 서러운 눈길이 닿는 강 먼 곳이 더 생생한 나이에 흔들리고 기울어진 세월을 나름 원만하게 건너갈 무렵 지난 날을 돌아보듯 찾는 강 담배 한 가치 길게 피우며 또 찾지 않을 듯한 걸음으로 그래도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홀로 돌아서는 강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연세의 정원 연세의 정원 연세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현재를 만나지만 북문으로 들어서면 역사와 고전을 만난다 '뉴욕에 있는 우리 겨레로부터 부쳐줌'의 계단을 오르면 잠시라도 멈칫할 수밖에 없다 모던 속에서 펼쳐지는 고전의 자취, 경건함 언더우드관,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핀슨관 나는 작은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본다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한 윤동주 시비,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머물고 있는 곳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5
어차피 내 편이잖아 어차피 내 편이잖아 젊은 날 경거망동에 바가지 긁으면 어때 어젯밤 취중객기에 구박 좀 받으면 어때 어차피 평생을 갈 추억이잖아 아이돌이나 멜로 배우를 좋아하면 어때 요리조리 비교하며 약 좀 올리면 어때 어차피 평생을 내 편이잖아 삐쳐서 쌩하고 안방문을 닫으면 어때 며칠동안 말 안하고 눈길도 안주면 어때 어차피 평생을 함께 가잖아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3
어린 왕자의 지구별 기행 - 청계천의 불빛 어린 왕자의 지구별 기행 - 청계천의 불빛 1020번 버스를 타러 광교를 건너는 길 청계천이 아닌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어 나는 다리 위에서 찬란한 불빛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지 이렇게 많은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왜 추워할까 표정들은 왜 어두울까 다리를 떠날 무렵에야 나는 알 수 있었어 그 이유를 도시는 너무 어둡고 찬바람이 불어 사람들은 너도 나도 등불을 켠다는 것을 가로수에도 보도블록 위에도 등불들은 걸려 있었어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등불을 켤듯해 겨울이 깊어갈수록 더 춥고 어두워지니 언젠가는 알겠지 가로수도 보도블록도 아닌 서로의 가슴에 등불을 켜는 법을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3
어린 왕자의 지구별 기행 - 이천고등학교 어린 왕자의 지구별 기행 - 이천고등학교 추운 겨울날 아이들을 만나러 이천고등학교에 온 날 웃음이 참 따뜻한 선생님이 교문 앞에서 맞아주신 날 아이들에게 내일의 꿈보다는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지 멀리 가는 것 높이 오르는 것만큼이나 머무는 것도 소중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 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어 내가 하고픈 이야기일 뿐 아이들이 듣고픈 이야기는 아닐 듯한 두려움에 자연보다는 인공을 보여주고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먼 훗날을 이야기하고 교문을 나섰지 앞으로만 걸어온 지친 나에게 웃음이 따뜻한 선생님은 알려주셨지 친절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우정의 글/우정 시선 2021.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