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513

기도

어제 온 전주, 1박 2일 출장 경기전도 있고 한옥 마을도 있지만 전동 성당만큼은 꼭 들른다 9시 일과 시작 전, 이른 아침의 산책~ ㆍ ㆍ 기도/BK 비가 내릴 듯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질 곳을 가리지 않듯이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 다스리는 이와 섬기는 이 가까이 있는 이와 멀리 있는 이 모두에게 빗방울과 같은 사랑을 주소서 만인이 사랑을 받도록 하여주소서

합덕성당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순교자의 흔적, 신도들의 마을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들판 작은 언덕 위의 오래된 성당 고딕양식, 두 개의 높은 종탑 종이 울리는 들녘, 농부의 기도 합덕성당을 찾은 날. 비가 내렸다 ㆍ ㆍ 합덕성당/BK 비가 내리는 날 빗소리를 따라가면 슬픈 순교자들이 있는 마을 바람 부는 들녘 낮게 솟은 언덕을 오르면 오래도록 서있는 성당 두 개의 종탑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농부가 기도하는 성당 인적 없는 날 쓸쓸히 홀로 걸으면 슬픈 순례자가 되는 마을

파사성에서

원주 부근에서 서울로 가는 국도‥ 여주를 지나는 길, 파사성을 들렀다 역사는 2천년에 이르지만 한 켠으로 밀려 있던 성‥ 혹자는 '버림받은 성'으로도 표현하던데 두 시간여의 나 홀로 산행‥ 참 좋다 멀리 보이는 성벽도 파란 하늘 아래 외로운 소나무도 홀로 핀 산벚꽃 무리도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줄기도~ . . 파사성에서/BK 오르는 산길에 마주친 것은 진달래인가 옛 여인의 수줍음인가 거니는 성벽에 서있는 것은 소나무인가 긴 세월의 기다림인가 산성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산벚꽃인가 헛된 꿈의 실루엣인가 멀리 구비구비 흐르는 것은 남한강인가 먼 길을 오가는 사연인가 떠나는 길에 불어오는 것은 바람인가 오늘을 지나는 시간인가

겨울비 주점

필스너의 고향 체코, 프라하의 뒷골목 차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나그네의 발길은 선술집으로 향하고 브레첼 꾸러미와 콜레뇨를 안주삼아 필스너 우르켈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ㆍ ㆍ ㆍ 겨울비 주점/BK 멀리 떠나온 곳에 비는 내리고 어둠이 오는 골목에 비는 내리고 가로등 주점 창가에 비는 내리고 기울이는 술잔에 비는 내리고 비가 그치면 비를 그리워할까 비가 그치면 돌아갈 수 있을까 비가 그치면 눈부신 빛이 올까 비는 술잔에 떨어져 술이 되고 술은 심장으로 흘러 타인이 되어 멀어지는 기억과 다가오는 꿈을 못내 외면하고 있다

빛과 의림지

의림지, 이천년을 이어온 삼한의 저수지 어린 시절을 안아주던 넓은 가슴 오늘은 '빛과 의림지'를 엮고 싶었다 태고의 풍경과 찰나의 빛, 그 앙상블을 ㆍ ㆍ ㆍ 빛과 의림지/BK 지나는 빛이 잠시 머문다 정자의 처마 끝에 버드나무 가지에 솔잎 마디마디에 수면 위의 얼음에 머무는 빛이 투영을 한다 소를 모는 아이를 줄이 끊어진 연을 상고머리 친구를 솔밭을 넘던 웃음을

고독한 식객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에 점령당하여 왔고 과거를 찾아가는 길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젊은 날, 대전발 영시 오십분 ~ 대전역 앞길을 조금 더 들어가면 아직도 후미진 골목이 있고 젊은 날, 쪼그려 자던 여인숙 입김을 불며 국물을 들이키던 육개장집 귀퉁이에 여전히 남아있다 돌아온 곳의 나 홀로 점심, 행복이다 . . 고독한 식객/BK 아련한 곳 시간의 뒤안길을 거슬러 눈길을 두면 그리운 풍경 그늘진 곳 후미진 골목을 돌아 발길을 옮기면 그리운 내음 따뜻한 곳 낡은 미닫이 문을 밀고 몸을 앉히우면 그리운 맛

깊숙이로

오늘, 제주는 조금 맑고 많이 흐리다 오후 3시 제주대학교 회의, 5시간의 여유 공항에서 제주대까지의 40리길 작은 길, 인적 드문 길로만 걸어 들어간다 올레길도 산길도 아닌 제주의 속살을 걷는다 ㆍ ㆍ ㆍ 깊숙이로/BK 멀리보다는 깊이 들어가고 싶다 표면의 밝음보다는 안쪽의 어둠으로 자꾸 들어가면 나의 안쪽도 보여질까 깊이 들어가며 안의 울림을 듣는다

백양사 가는 길

백양사 가는 길, 단풍은 떠나고 없었다 잎이 떠난 단풍나무와 갈참나무의 길 그래도 그 길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을 하늘, 잎 떠난 가지를 스치는 바람 계곡을 내려오는 물, 천년고찰의 고요 좋다. 나그네가 되어 잠시 머물기에는 백양사 가는 길 형형색색 화려하였던 잎들이 떠나간 자리 그 빈 공간을 하늘 높은 구름 가지를 스치는 바람 계곡을 내리는 물이 채우고 있다 머물고 있는 나 돌아보는 그림자 오고 가는 생각들이 거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