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519

떠나는가, 이 오월에

떠나는가, 이 오월에 화창한 날 내 몸에 부딪혀 보석처럼 빛나던 은빛 햇살들은 녹음에 밀려 떠나고 있다 오월 어느 날 아카시아 꽃 향기가 물결이 되어 골목길을 돌아 돌아 흐르던 날 뒷산의 녹음은 마을 어귀까지 내려와 몸에, 마음에 녹색 그림자를 짙게 만들어 가고 젊은 날들을 지탱하여 왔던 나의 젊음, 나의 사랑은 아카시아 꽃 향기가 되어 녹음 속으로 떠나고 있다 가을의 이별보다 봄의 이별은 밝다 그래도 내 젊음, 내 사랑은 떨어지는 낙엽이 아닌 아카시아 꽃 향기 짙은 녹음과 함께 떠난다 가을의 이별 뒤에 마시는 술은 차가운 땅을 일어서는 안개가 되어 머릿속의 상처로 깊게 파고들지만 봄의 이별 뒤에 마시는 술은 슬픈 소리로 흐르는 시냇물이 되어 가슴을 부드럽게 적신다 이제 떠나는가 나의 젊음, 나의 사랑은..

뇌샤텔에서

뇌샤텔에서 취리히에서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산과 호수를 지나면 뇌샤텔에 닿는다 묻혀 있어서 좋은 곳, 칩거할 수 있는 곳 나는 자유인이 된다. 호수의 마을에서 시내에서 전차로 다시 떠나면 아레우스역 그리고 멀리로 걸으면 멀리 잊혀져 간다 너무 넓어서 바다가 되어버린 호수 중세의 옛시가지, 포도가 익어가는 마을 이렇게 머무르고 떠나고, 떠나고 머무른다 이팅거 맥주에 곁들이는 뇌샤텔 퐁듀 가을인 듯 서늘한 바람이 흐르고 있다 멀리 호수 너머로 해가 떠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