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포토는~ 詩畵로* 80

시나이아의 가을길

시나이아의 늦가을 길 시나이아에서의 사흘 산책, 그저 길을 걸었습니다. 산비탈을 따라 자리잡은 마을 위로 오를수록 더 많은 바람을 만났습니다. 바람 늦가을 낙엽들을 이리저리 날리는 바람은 지난 시간들을 담고 흐릅니다. 그리운 사연들이, 잊지 못할 얼굴들이 바람결을 타고 다가오고 얼굴과 가슴에 잘게 부딪고 그러고는 멀어져갑니다 늦가을 산책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 가는 길입니다. 이명례 화가 그는 오늘도 산길을 걷겠지요. 홀로의 산책에 익숙한 이들만이 알 수 있는 그 감성, 그 기분이 캔버스에 안개처럼 담겨있습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높은 하늘로 솟은 미루나무가 흔들린다 반짝이는 빛의 조각들이 마루나무 이파리에서 물방울처럼 튀어 오른다 바람이 분다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뭉개구름이 흘러간다 아련한 그 날..

빈 중앙묘지 가는 길

2013년, 늦가을 빈,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 인근의 숙소에서 중앙묘지까지 8키로 정도 그 길을 걸어서 음악가들을 만나러 가는 길 아침 햇살은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앙상한 나무가지에 걸려 있었고 추웠던 날 노란색 벽의 햇살이 순간의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햇살 따뜻하지만, 마음은 추웠던 날 이른 봄날 햇살이 닿는 돌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어린 날의 내가 자꾸만 보고 싶었다. 이명례 화가 햇살을 더 넓게 폈다. 연초록을 더하고 앙상한 겨울 가지에 꽃인 듯 바이올렛을 피웠다. 그가 머무는 곳 그의 마음씨처럼 하늘 푸르른 날에는 하늘 푸르른 날에는 그 빛을 등불 삼아 마음 속 깊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보자 이끼 낀 계단 아래 이제사 겨우 하늘빛 와 닿는 아득한 구석에는 눈물 자국 남은 어린 ..

먼 바닷가에서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덴마크의 쇠뇌르보르까지 가는 자동차 여정 약 800키로, 1박 2일의 행로 그러나 오슬로를 출발한지 한시간 만에 그 여정을 더 늦출 수 밖에 없었다. 여기 모스의 바닷가 덕분에 이 한적한 바닷가에서 얼마든지 머물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 조차도 잊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낡은 벤취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그 고요의 정지 한 가운데에서 자아를 가다듬고 혼돈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 바닷가 영원히 잊지 못하리 최은주 화가 많은 그의 그림을 접하였고 소유하기도 하였지만, 아직 얼굴은 커녕 목소리도 듣지 못한 화가 그의 화실은 경상도 경산에 있다. 전원과 함께, 일상의 고운 풍경들을 담는 그의 그림들 그는 어떤 이유로 이 사진을 택하여 그렸을까 그 날 나의 머무름, 그 이유를 짐작은 하였을까..

자작나무 4계

훗카이도 수년전 늦가을, 나는 삿포로에서 키타미까지의 먼 길을 가고 있었다. 오비히로, 시호로 등 크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면서 그 여정, 그 풍경에서 만난 자작나무 숲 숲길을 걸으며 차가워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고, 생각을 하였다. 하얀 겨울을, 그리고 뒤이어 올 봄을 이명례 화가 그는 늦가을의 자작나무 숲에 더하여 겨울, 그리고 봄과 여름을 그렸다. 낯익은 풍경, 익숙한 느낌 그는 나와 함께 훗카이도를 달렸나 보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면 자작나무 숲으로 가면 흰머리에 조금은 창백한 얼굴이어야 해 숲과 어울리는 빛깔, 그 모습으로 한 켠에 기대어 앉아 자작자작 타는 가슴으로 살아온 세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 비바람에 시달린 날들 수도 없이 떨어진 잎새들의 노래 서럽도록 그리운 이야기들을 떨어지고 뒹굴면..

교토의 풍경

교토, 나라, 오사카 터벅터벅 뚜벅이의 여행 수년전, 늦겨울 아니, 이른 봄이었는지도 모른다 교토에서는 옛것을 찾아 걸었다. 오랜 구옥들, 절, 그리고 세월을 담은 물길같은 골목들 그저 그 느낌이 좋았다. 목조 건물 아래를 걷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오랜 시간의 내음이 있다. 어스름이 내릴 무렵 홀로 찾는 이자카야에는 고독이 좋아 머무는 취객들 그들 사이를 비집고 앉는다. 이선희 화가 어느 그림 경매 사이트에서 눈길을 끈 그의 작품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인연 어느 틈에 교토의 구옥을 그렸다.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마주한 자리 그림을 향한 의욕과 열망이 남달랐던 화가 반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이지만 그의 눈망울은 여전히 또렸하다. 교토에 오면 교토에 오면 고전을 읽는다 숨겨둔 옛 이야기 그 사연을 지..

아내의 모습

몇해 전, 훗카이도 여행 아내의 모습을 몰카? 했습니다 삿포로에 있는 평온한 어느 기념관, 창밖에는 초록이 있고 창가에는 목조 책상과 의자 그저 앉아서 뭔가 읽고 쓰거나 그리고 싶은 공간입니다. 평창동 집에서도 꽤 오랜동안 익숙하였던 아내의 모습 슬쩍 누른 셔터가 제법 어울리고 또, 편안한 정경을 담아냅니다 적당한 어둠이 오는 듯 실내의 빛은 조금씩 밝아져가네요. 이상융 화가 표정과 느낌,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참으로 잘 표현하십니다. 침실의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아내의 모습 그대의 곁모습을 본다. 미안함도, 고마움도 쌓여있는데 긴 세월이 흐르다 보니 격식을 차림이 어색하여 앞에 서지를 못하고 곁에서, 혹은 뒤에서 바라만 본다. 그대가 모르게 젊은 날의 혈기 중년의 방황과 혼돈 세월따라 겪어온 사연들을 때..

태화강의 대숲

2020년 4월 어느 바람 좋은 날, 울산 테크노파크 출장길입니다 업무는 오후를 조금 넘겨 마쳤고 교통편까지는 여유가 있어 태화강변을 걸었습니다. 4월의 봄 대숲은 바람결에 이리저리 일렁이고 그 사이사이를 햇살이 참 곱게도 스며듭니다. 강과 하늘이 같은 색깔이던 날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지던 날 오랜 추억과 그리운 이들의 음성을 품고 귓전 가득히 밀려오는 대숲의 바람 소리 태화강변의 산책은 지금도 꿈결입니다. 이명례 화가 바람의 대숲 사이를 지나 빛의 강으로 가는 길을 꿈결인 듯 그리셨습니다. 눈을 감으면 여태껏 바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햇빛과 그림자 그대는 햇빛 나는 그림자 그대가 있기에 나도 있습니다 그대가 밝고 화사하면 나도 또렸해집니다 그대가 휘청이면 나도 함께 휘청입니다. 그대가 멀리 산너머로 떠..

평창동 뜰의 자목련

평창동의 집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저마다의 어울림으로 참 예뻤습니다. 그 집을 떠나온지 5년이 되어갑니다. 그래도 우린 여전히 그 집, 그 뜨락을 잊지 못합니다. 봄이면 사방에서 피어오르던 숱한 꽃망울들 대문가에 늘어지던 벚꽃들 뒷뜰에 열리던 앵두와 매실들 여름에는 짙은 초록으로 가득 덮여 녹음 짙은 향기가 흐르던 뜰 어느 들창을 열어도 초록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단풍잎, 담쟁이 이파리들이 색칠하는 가을 주렁주렁 열리던 감 겨울, 뭔가 신비로운 느낌으로 현관문을 열면 마당 가득, 하얀 세상이 찾아오던 계절 우린, 평창동의 사계절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죠. 방성희 화가 4월의 뜰에 피어난 자목련 한송이 강렬하면서도 곱게 그렸습니다. 불현듯 전해온 선물 여전히 만난적은 없어도 고마운 마음은 늘 지니..

나의 초상

2020년 1월의 끝무렵 삼청동, 4차원 갤러리에서, 나는 엄청 고운 그림을 보았다. 색연필로 그려진 동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들의 표정과 웃음, 자연의 향기 고향의 추억 그의 그림은 내게는 피노키오와 같은 동화였다. 그리고 한주일 후 제페토 할아버지의 온화한 얼굴 그를 만났다. 나는 그를 '성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한달이 지날 무렵, 이태원 산책길 색연필로 그려진 그 날의 초상을 받았다. 성님은 여전히 건재하시다. 이상융 화가 사진은 사람의 모습과 꽃의 예쁨을 담고 그의 그림은 표정과 향기를 더한다. 나의 생이 그와 생과 겹침에 가까이 있음에 감사하다. 바라보는 나 한적한 카페의 윈도우 자리에 앉아 외로움과 마주한 나를 스케치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저만치 떨어져 ..

나무에 걸린 연

세월호 소식을 듣던 날 하염없이 걷다가, 높이 나뭇가지에 걸린 연을 보았다 어린 시절의 데자뷰 한동안 트라우마로 있던 옛기억이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나뭇가지에 걸린 연 너머로 한참을 하늘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떨구고는 한참을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이 그림을 그리신 이명례 화가 그 날 내 마음, 내 심정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미루나무 아래에서 길을 걷다가 나무에 걸린 연을 본다 금빛 연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연을 날리던 아이가 궁금해진다 밤을 새워 만든 가오리연이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연을 가리키며 울기만 할 때 눈물이 볼에서 얼어갈 때 연도 긴 꼬리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밤이 오고 연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을 때 논둑 길을 넘어지듯 집으로 왔다 나는 다음날에는 미루나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