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부산, 하오 세시 반

부산, 하오 세시 반 8월 어느 날 부산역에서 해운대로 가는 길 버스 창가에 앉으면 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들 버스는 그저 그런 속도로 움직이고 풍경도 그렇게 뒤로 가는데 하오 세시 반은 하오 세시 반처럼 지나고 있네 풍경들은 우연히 마주쳐 기다린 듯 다가오며 저마다의 사연들 전하는데 무한한 시간의 이어짐에서 이토록 작은 파편들이여 우리 그 날들도 이렇게 지나간 풍경이었을까 나뭇잎 하나 창가에 닿듯이 그렇게 그저 남아있을까 우리 희미한 웃음들도 밤이 되면 한 구석이라도 밝힐까 저기 해변의 가로등처럼 그리고 잊은 듯 일어설까 저기 마린시티의 마천루처럼

번개팅

번개팅 아침, 출근 길을 나서다 저녁 무렵, 출장을 마치고 문득 떠오르는 얼굴 마침 여유가 있는 시간 '오늘 얼굴 한 번 볼까요?' 그래도 종종, 만남은 성사가 됩니다 '번개팅'이라고도 하죠 학회나 회의에 가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혹은, 초면에 맘이 끌리는 모습 마침 여유가 있는 시간 '오늘 한 잔 할까요?' 그래도 종종, 만남은 성사가 됩니다 '번개팅'이라고도 하죠 인연은 100프로 필연이겠지만 확률이 10프로 이하인 이런 ‘우연 같은 필연’이 좋습니다. 걷다가 마주친 표정 우연히 발끝에 닿는 들꽃 고개를 들면 다가오는 하늘 한층 반갑고 아름답듯이

버스에서

버스에서 사람들은 내리고 오르고 더러는 곁에 앉고 더러는 멀리 서고 숨결과 표정을 나누기도 혹은 눈길 한 번 못 마주치고 영영 떠나고 헤어지지 버스는 늘 종점까지 같은 길을 가는데 같은 정거장을 지나는데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사연을 안고 다른 모습으로 타고 내리지 창가를 보며 채비를 하며 시간의 벨을 누르지 지나간 정거장은 영영 잊어버리지

배려 (K-Light, 2020년 7월호)

배려 누구나 한 시절 화려한 날들이 있었겠지요 외로울 때, 좌절할 때 그 날의 기억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날들이 마음 속의 훈장으로 빛나는 그런 날들이 그 날은 그 날일 뿐 화려한 날들이 지나면 기꺼이 물러서야 합니다 어느 정거장에서 다음 승객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듯이 누군가의 화려함을 위한 배려가 되어야 합니다 꽃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잎과 줄기, 그리고 어둠 속의 뿌리 누군가 뒤를 이어올 빛을 위한 따뜻한 어둠이어야 합니다 배려 (daum.net) 배려 이제야 보았습니다 K-LIGHT~ 는 빛을 연구하는 과학/공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광학회~ 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광학 매거진~ 입니다 몇년전부터인가? 쉬어가는 코너에서, 제 시를 연재하고 있네요 2020 blo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