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수국 (플라스틱 사이언스)

수국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버이날, 화분을 보내드리려 화원을 들어섰는데 한 켠의 풍성한 꽃, 은은한 빛깔 저토록 많은 꽃송이들을 작은 체구로 어찌 지탱하고 섰는지 곱기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떠 올랐습니다 잎보다 꽃이 많아 받기보다 주어야만 하는 희생이 떠오르는 꽃 인고의 세월이 떠오르는 꽃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수국을 선뜻 들었는지 어머니가 이유를 아실 듯 하였습니다 꽃이 알려줄 듯도 하였습니다

성모에게

성모에게 그토록 차갑게 돌아섰기에 영영 잊은 줄로 알았던 그대를 이역만리 여행길 여기서 보았습니다 그대를 닮은 이름이 불려질 때 스쳐가는 그대 모습을 보았습니다 뒷모습이 너무도 흡사하여 하마터면 어깨에 손을 얹을 뻔 하였습니다 그대를 닮은 음성이 들려올 때 스페니쉬라도 그 뜻을 알 듯 하였습니다 듣고픈 이야기가 되어 굳어진 가슴 빈틈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토록 차갑게 돌아섰기에 영영 잊으려 떠나온 여행길, 그대를 외려 여기서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새벽달에 묻다

새벽달에 묻다 너를 만나려 새벽을 나섰나 보다 검고 적막한 밤을 홀로 건너온 너 세상은 모두 꿈나라로 떠난 밤에 무얼 보았니? 무얼 느꼈니? 오래 전에 떠난 사내가 밤길로 돌아와 담 너머로 기웃거리는 모습 서러운 아낙이 뒤꼍에 쪼그리고 앉아 밤새 눈물을 훔치는 모습 멀리서 너의 은은한 빛으로 안아주었니? 어젯밤 꿈결 속의 아늑한 품 기꺼이 내어준 이도 너였니? 대답 대신에 웃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