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6

작은 창

작은 창 작은 창이 있었지 아침이면 창을 닮은 햇살이 들어와 방 바닥에 펴졌지 졸린 눈으로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려 하면 빛은 손등으로 올랐지 따뜻했던 빛 빛을 따라 창가로 가서 가치발로 밖을 내어다 보면 큰 나무와 파란 하늘 흔들리는 꽃으로 바람을 볼 수 있었지 나무에 올라 높고 넓은 하늘로 날아 올랐지 얼마나 날았는지 몰라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 많은 이들을 만났는지 희미해져만 가네 몇 해 전의 풍경이 희미하고 인연들의 이름이 잊혀져만 가네 이제 그만, 나뭇가지에 걸터앉고 싶네 바람을 느끼다가 꽃을 보다가 작은 창으로 돌아가 손등에 닿는 햇살 느끼고 싶네 졸린 눈을 감고 싶네

자작나무 숲으로 가면 (종로문학, 2020년)

자작나무 숲으로 가면 자작나무 숲으로 가면 흰머리에 조금은 창백한 얼굴이어야 해 숲과 어울리는 빛깔 그 모습으로 한 켠에 기대어 앉아 자작자작 타는 가슴으로 살아온 세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 비바람에 시달린 날들 수도 없이 떨어진 잎새들의 노래 서럽도록 그리운 이야기들 떨어지고 뒹굴면서도 하늘로 하늘로 향한 삶의 의지 우아하고 초연한 모습 그 이야기들 짙은 커피 한 잔으로 정원을 거니는 귀족 자작이 되어야 해

자연

자연 세월이 가니 나 역시 자연의 하나 저기 숲, 먼 바다의 한 켠 산새가 걸터앉는 나무 파도가 부딪는 바위와 뭐가 다를까 바람이 불면 바람결에 흔들리고 비가 내리면 빗물에 젖는 한 그루 나무 한 덩이 바위와 뭐가 다를까 꽃이 한철을 피듯이 새가 한나절을 울듯이 삶도 하루의 일상이었네 일상이 모여 인생이었네 한 개의 조약돌 한 줄기 햇살, 한 잎의 낙엽 더도 덜도 아니었네 그저 자연이었네 자연의 하나였네

이별 후에

이별 후에 나도 모르게 잊혀지겠지 바람이 떨어트린 꽃망울처럼 냇물이 쓸고 간 조약돌처럼 바람이 가는 길 냇물이 가는 길 오래도록 먼 길에서 잠시 스친 우연이 되어 아득히 멀리 잊혀지겠지 떨어진 땅에서 하늘을 보다가 남겨진 채로 기억을 찾다가 나도 모르게 잊어가겠지 밤을 새워도 못다 부른 노래처럼 아침, 옷깃을 스친 이슬처럼

이별 생각

이별 생각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언젠가는 이별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마주보며 웃는 얼굴 아침이면 함께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 늦은 밤, 기다리는 마음 언젠가는 이별하여야 할 모습입니다 멀리 떠나는 공간의 이별이든 영영 떠나는 시간의 이별이든 이별을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들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다가올 이별의 날에 조금은 덜 슬프게 조금이라도 웃으며 떠나고 보낼 수 있도록 더 배려를 하며 더 따스한 마음과 말을 전합니다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우정에 관하여 (종로문학, 2021년)

우정에 관하여 10대에는 훌륭한 사람이 좋았다 위인전 이야기를 100프로 믿었으며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대에는 멋있는 사람이 좋았다 외모가 출중하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는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부러웠다 30대에는 성공한 사람이 좋았다 좋은 자리에 있고 화려한 생활을 하는 그와 같이 되고자 노력하였다 40대에는 안정된 사람이 좋았다 편안한 위치에서 늘 한결같은 사람 그런 이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50대에는 매력있는 사람이 좋다 나와는 많이 다른 세월을 살아온 이들 이야기를 나누면 책을 읽는 듯 하다 60대가 되면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함께 어울려온 이들 새로 만나는 이들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