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 795

청사포

청사포 바다 물결만큼 모래도 맑았던 곳 언덕, 좁은 골목들 틈으로 푸른 하늘과 바다 색종이처럼 비치던 곳 작은 방, 나그네로 앉아 문을 열면 물새 소리, 솔바람 소리 더불어 들어오던 곳 권하는 탁배기에 푸른 하늘이 채워져 바다 물결 술잔 속에서 찰랑이던 곳 그 때는 그랬단다 아이에게 뜻 모를 설명을 하며 멀어져 간 바다 더 멀어져 간 세월을 바라보는 곳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밖에 바람이 지나듯 시간이 나를 두고 지난다면 마주칠 수 없었던 인연들 시간의 앞과 뒤에서 불러 멈출 수 있을까 부르는 소리에 창문을 열고 천천히 다가온다면 사람아 인연아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리 서있는 나를 두고 시간이 무심히도 지났다고 홀로 남겨졌다고 에둘러 변명을 하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볼까

진눈깨비 내리는 날

진눈깨비 내리는 날 진눈깨비 내리는 날에는 창가에 기대어 술을 마시자 빗물도 눈물도 아닌 서글픔이 추적추적 종일을 내리는 날에는 창가에 기대어 술을 마시자 창에 귓불을 대어보면 아련히 들려오는 노래들 슬픈 기억에는 슬픈 곡조로 기쁜 기억에는 기쁜 곡조로 가슴을 먹먹히 채우는데 진눈깨비 내리는 날에는 빈 술병들을 창가에 두자 후회도 참회도 아닌 무언가가 추적추적 술병에 담기는 날에는 창가에 기대어 잔을 채우자

종탑을 오르며

종탑을 오르며 마주친 이가 슬픈 표정으로 울릴 수 없는 종이라고 일러주어도 나는 종탑을 올라갑니다 종을 울리기보다는 회개를 위해 오르기 때문입니다 종탑을 오르며 죄로 두터워진 마음을 땀과 바람에 씻기 위함입니다 더 멀리까지 바라보면서 종소리가 어디까지 닿아야 하는지 그대가 어디쯤 있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종이 되기 위함입니다 바람결만으로 울리는 종 시간의 진동만으로도 맑은 소리를 내는 종 그러한 종소리를 다시금 그대에게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작은 창

작은 창 작은 창이 있었지 아침이면 창을 닮은 햇살이 들어와 방 바닥에 펴졌지 졸린 눈으로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려 하면 빛은 손등으로 올랐지 따뜻했던 빛 빛을 따라 창가로 가서 가치발로 밖을 내어다 보면 큰 나무와 파란 하늘 흔들리는 꽃으로 바람을 볼 수 있었지 나무에 올라 높고 넓은 하늘로 날아 올랐지 얼마나 날았는지 몰라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 많은 이들을 만났는지 희미해져만 가네 몇 해 전의 풍경이 희미하고 인연들의 이름이 잊혀져만 가네 이제 그만, 나뭇가지에 걸터앉고 싶네 바람을 느끼다가 꽃을 보다가 작은 창으로 돌아가 손등에 닿는 햇살 느끼고 싶네 졸린 눈을 감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