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강남에 있었어, 비가 내렸어

BK(우정) 2022. 8. 3. 07:09

 

강남에 있었어, 비가 내렸어

 

강남 삼성로를 걷는 동안 비가 내렸어

콘크리트 궁전이 빗물에 젖고 있었지

 

우산으로 스카이라인을 가리고

가로수가 많은 풍경을 따라

사진을 찍어 보았어

조금이라도 신작로를 들여 앉히고 싶었지

 

보도블록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땅속으로 스며들지도

풀잎들의 뿌리에 닿지도 못하고

물 웅덩이를 만들지도 못했지

 

바닥에서 튀어 오르고,

달리는 자동차에 부딪치고 나서

빠르게 드레인으로 향했어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처럼

 

비가 그치니 보도블록도

콘크리트 벽도 커다란 유리창도

금방 메마르고 비가 내린 흔적은 사라졌어

 

강남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였어

느릿느릿 나 홀로만이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고 있었지

 

- 강남에는 비/BK

 

 

 

한강변을 걸었어. 잠수교를 따라

 

비가 내리면 강은 비에 젖는다

어차피 젖어 흐르는 강,

몇 줄기 비의 의미가 있으랴마는

 

눈물이 흐르면 세월은 눈물에 젖는다

어차피 울며 살아온 세월,

몇 줄기 눈물의 의미가 있으랴마는

 

- 한강에는 비/BK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

여전한 비, 다시 내리고

.

.

 

차창에는 비

 

먼 허공에 수증기로 흩어진 수많은 사연들이

얽히고 설켜 비로 내리나

보라고 들으라고 멀건 유리창을 두드려

차창가에 잠든 나를 깨우나

 

물방울이 되어 잊혀진 눈물이 되어

차창을 타고 아래로 흘러 마음을 적시나

못견디면 내리라고

그 곳이 어디든지 목적지라고

부시시 일어나서 벨을 누르나

 

거리에는 비

 

- 차창에는 비/BK

 

 

 

덕수궁에 내렸어. 명동 쪽으로 걸었지

 

 

 

우울한 어둠이 밀려오면

불빛이 그리워 찾는 곳

서서 마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술집이다

 

하루 삶에 지친 영혼들

꾸역꾸역 모여들어

서로의 사연을 추렴하는

길잃은 길손들의 쉼터

 

온 곳도 갈 곳도 모르고

잠시나마 등을 기대는 곳

우리네 부질없는 삶도

결국은 선술집이 아니랴

 

허무한 불빛이 밀려오면

어둠이 그리워 떠나는 곳

오래 머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술집이다

 

- 선술집에는 비/BK

 

 

 

어둠이 왔네, 이제 택시를 타야겠어

 

 

명동에 가면 아직도 남아있는 명동이 있지

시간은 머물고 70년대 팝송은 흐르는 곳

나조차도 그 때 그 시절로 돌아서는 곳

오크색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그 때 그 사람이 표정도 없이 지나가는 곳

 

명동에 가면 아직도 멈춰서있는 내가 있지

젖은 담배라도 물면 눈물인지 기억인지

혀를 감고 내려가 가슴 안쪽까지 적시는 곳

비라도 내리면 잘 살아왔는지 못 살아왔는지

그 혼돈에 맥주라도 몇글라스 더 마시는 곳

 

명동에 가면 두고 돌아서는 이별이 있지

그 날처럼 꼬깃꼬깃 지폐로 값을 치르고

불빛의 거리, 그치지 않는 비에 우산을 펴면

다들 지워지는 화장, 헤어지는 모습들

시간만 남겨두고 무심히 택시를 타는 곳

 

- 명동에는 비/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