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프라하의 기억

BK(우정) 2022. 5. 24. 05:40

 

필스너의 고향 체코, 프라하의 뒷골목

 

 

차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나그네의 발길은 선술집으로 향하고

 

브레첼 꾸러미와 콜레뇨를 안주삼아

필스너 우르켈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멀리 떠나온 곳에 비는 내리고

어둠이 오는 골목에 비는 내리고

가로등 주점 창가에 비는 내리고

기울이는 술잔에 비는 내리고

 

비가 그치면 비를 그리워할까

비가 그치면 돌아갈 수 있을까

비가 그치면 눈부신 빛이 올까

 

비는 술잔에 떨어져 술이 되고

술은 심장으로 흘러 타인이 되어

멀어지는 기억과 다가오는 꿈을

못내 외면하고 있다

.

.

 

캐슬 프라하, 서울

 

 

들어서면 작은 프라하가 있다

 

 

아는 이가 와인은 눕혀 보관하란다.

와인은 코르크가 마르면 생명을 다한다고

와인을 길게 누이며

곁에 누워 보고픈 마음이 든다.

 

삶의 대부분을

발은 땅을 딛고 머리는 치켜들고 살아 와

말라버린 코르크가 된 뇌를 가진 우리들

 

말라버린 뇌의 틈을

가는 실핏줄들이 힘겹게 헤집는다.

바위에서 자라는 석란의 잔뿌리처럼

 

오늘부터라도 종종

와인처럼 길게 누워

마른 틈을 힘겹게 헤집는 실핏줄들에게

혈액이라도 공급하여야겠다

 

.

.

 

 

카프카

 

'변신'과 '심판'보다는

카프카를 읽고 싶었다

 

사랑과 이별

숱한 미완성들

삶의 고뇌와 고독

젊은 날의 죽음을 읽고 싶었다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메셀로바 거리 근교

그의 작업실

황금소로 22번지

그의 흔적과 자취를 걸었다

 

그를 찾고

그를 느끼고

그를 마셨다

 

카프카보다는

카프카를 그리워한 프라하

그리고 젊은 나를 읽고 싶었다

 

.

.

 

 

체코 비어들

 

글과 사진

그리고, 크래프트 비어

 

 

언제부터인가, 술은 풍경이 되었다

 

햇빛 좋은 날 오후, 마주앉은 벗

함께 잔을 넘기는, 그렇게 그려보는 풍경

 

다른 세계에 와서 취하면 또 다른 세계가 되지

 

결국 우리는 다른 세계만을 찾아 헤매이다가

머물던 곳, 떠나온 곳마저도

아득히 잃어버리고

 

방랑자가 되어 더욱 더 먼 곳으로 떠나는 거야

 

 

사진 한장, 시계 바늘로 시작된 기억이

술 한 잔, 노래 몇 곡으로 추억이 되고

술 몇 잔, 어둠과 혼돈으로 현실이 되지

 

분위기가 절정일 때 떠나야 해

시들지 않고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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