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들/울 집, 울 동네

그 시절, 우리집의 꽃들

BK(우정) 2022. 4. 27. 21:45

 

2016년ᆢ이 무렵, 4월,

그 시절 우리집의 꽃들

그 해 겨울에, 우린

집을 두고 떠났지ᆢ

 

 

꽃을 보면

 

꽃을 보면

꽃처럼 곱게 피고 싶어요

 

꽃을 보면

꽃처럼 열심히 살고 싶어요

 

꽃을 보면

꽃처럼 귀하게 지고 싶어요

 

 

 

꽃이 지는 날

오래된 사랑도 지고 있다

낡은 셔츠를 걸치고

친구를 만나러 가던 날

꽃잎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로

이별이라는 쪽지가 왔다

친구에게

소주 몇 병을 들고

꽃나무 아래로 오라 했다

 

낙엽이 아닌

꽃이 지는 날

꽃나무 아래 술잔으로

꽃잎들은 떨어지는데

오래된 기억, 오래된 사랑도

꽃잎들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데

봄이 가듯 사랑도 가고

오늘 하루도

셔츠처럼 낡아만 간다

 

 

봄에 내리는 눈은

벚꽃잎들이 되어 바람에 날리고

가을에 내리는 눈은

메밀꽃이 되어 흙 위에 쌓인다

 

 

 

편린이 되어

부서지고 흩날리고 쌓이는 풍경이 좋다

 

하나의 정물이 되어

화려한 날 뒤에 잊혀져 가기 보다는

무수한 조각들이 되어

오래도록 흩날리고 소리없이 쌓이고 싶다

 

크게 비추는 둥근 달보다는

둘레를 잔잔히 흐르는 달무리이고 싶다

 

벚꽃잎들이

햇살아래 부서져 흩날리고

소리없이 내려 앉아 벚나무 둘레에 쌓이듯이

 

바람이 되어 물결이 되어

그대 곁을 흐르고

그대의 둘레에 쌓여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

 

 

.

.

 

이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생김새에서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난 벗

 

얼굴에 주름은 늘었어도

삶의 향기가 더없이 곱도록

삶의 의지가 더없이 크도록

 

선하게도

열심히도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왔구나

 

모과처럼

 

 

 

봄꽃들이 떠나는 뜰, 노란 꽃들이 핀다

들꽃에 익숙한 벗이 '애기똥풀꽃'이란다

꽃 이름을 듣는 순간 오는 느낌

아! 꺾인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수액

 

가만이 들여다보면 이름만큼 정겹다

꽃봉오리에는 솜털이 보송송하고

열매는 작은 콩꼬투리처럼 맺히고

길게 뻗은 암술 주위로 오종종한 수술들

엄마 곁에 모여서 노는 애기들 같다

 

미풍에 흔들리는 네 장의 얇은 꽃잎

두 해만 사는 아쉬움으로 오래 피는 꽃

키 큰 나무들 아래, 노란 물결이 찰랑인다

꽃말은 '엄마가 몰래 주는 사랑'이란다

 

 

 

자연은 이야기를 꽃으로 전한다

뿌리 아래 깊숙한 어둠으로부터

어젯밤의 별빛, 새벽의 이슬 이야기까지

바람 차가운 날, 작은 씨앗으로 떨어져

아래의 어둠, 위의 빛으로 나고 자라서

줄기를 세우고 잎을 열고

꽃으로 피어난 세월 이야기까지

인간사 5감에서

보아서 얻는 소식이 대부분이고

여기에 향기까지 더해지니

꽃이 전하는 이야기 거리가 넘친다

땅 아래 지하수, 하늘 위 은하수

그 깊은 이야기를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

형형색색 아름다움으로 펼쳐 놓는다

땅으로 낙하한 수많은 씨앗에서

생을 부여잡고 힘겹게 피어난 의지

지하수 아래의, 은하수 위의 이야기들

색깔과 향기만큼이나 서로 다른

아기자기하고 구구절절한 사연들

더 없는 아름다움으로 피기 위해

겪어야 했던 슬프고도 모진 사연들

오늘도 봄볕 아래에서

꽃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빛으로 향기로 바람으로 전하는 말

꽃 그늘아래, 꽃으로 머물고 싶다

삶의 희로애락을 꽃처럼 엮어간다면

언젠가는 한 송이 꽃으로 필 수 있을까

속삭이듯 꽃들에게 묻고 있다

예쁜 꽃들만 모아서 만든

화려한 화단

그 아름다움이 넘친다

 

 

생에서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만 모아

기억 속에 담는다면

아름다움이 넘칠까

 

그 아름다움이 행복일까

그 행복이 아름다움일까

 

허락된다면

모질게 살아 온 질경이

세월을 겪고 의젓한 가을 국화

고통을 감내한 인동초까지

화단에 담고 싶다

 

어느 날

홀연히 눈을 감는 날

기쁨과 슬픔 그리고 인내로 어우러진

세월의 화단을 보며

 

행복하였다고

아름다웠다고

그렇게 되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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