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여행, 어디론가

마드리드, 사라고사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BK(우정) 2022. 7. 16. 17:50

5년전, 2월이던가

 

아무 일도 없어서,

여전히 기억이 나는 하루

 

비행기는 마드리드 도착,

새벽이었어,

기차역으로 갔지

 

 

차가운 공기는 폐 깊숙이로 들어왔어

 

사라고사행,

당일 기차표는 없었어,

하루를 묵기로ᆢ

 

예측 못한 하루가 주어진 거야,

역 가까운 호텔을 잡았지

.

.

 

 

갑자기 온 하루,

종일을 마요르 광장에서 기다렸어

뭔가를, 누군가를ᆢ어떤 일들을ᆢ

 

 

이상한? 사람들만 자꾸 다가오더군

 

멀쩡한 사람을 만나거나,

멋진 일을 기대하며 참았지

 

 

상그리아를 몇 잔, 기울였어,

그래도 조금씩 취해갔지

 

차갑고 섹시한 표정, 달콤한 향기로 너는 허니문의 밤처럼 나를 적시고 있어

 

게으른 나는, 늘 기다리지

누군가 와서,

무언가 저질러지기를ᆢ

.

.

 

 

책 한권, 글 몇 줄에

겨울밤은 금새 다가왔어

 

아무 인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나는,

호텔까지 걸으며 마지막 희망을 가졌지

 

  

집으로 가는? 이들은 서두르고들 있었어.

홀로 천천히 ᆢ

.

.

 

 

결국, 호텔 근처에 도착,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뒷골목 주점에 들렀어ᆢ

안색이 안좋아 보였는지 묻더군

무슨 일 있느냐고ᆢ

아무 일이 없어서 그런다고ᆢ답했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위로를 해주더군

 

하루의 끝 담배로ᆢ

하루의 우연, 인연, 필연을 포기했어

 

  

긴 밤은 무료하도록 흘러갔고

 

다음날 새벽, 사라고사행~ 기차를 탔어

결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ᆢ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새벽이 되면 결국은 솔로가 되지

뒷골목 낡은 선술집,

역의 플랫폼,

결국은 솔로가 되지

그래서, 술잔은 화려하고

등불은 빛이 나는 걸

그래서, 오래된 창가,

낡은 서재가 그리워지는 걸

 

190216

 

지나고 보니, 그 날 하루도 사연이었어ᆢ

.

.

 

계절에 실려 흘러가면서

지난 겨울을 이야기한다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데

또 다른 봄은 오고 있다

 

가슴에 소설 한 권씩은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

책장마다 눈물꽃이 되어

책갈피로 끼워진 사연들

 

그 사연들을 그러모아

한 폭 수채화로 그릴까

그 사연들을 풀어 헤쳐

한 필 비단으로 엮을까

 

계절에 실려 흘러가면서

봄꽃을 피울 채비를 한다

땅은 아직도 얼어있는데

또 다른 봄은 오고 있다

.

.

 

 

마드리드발, 사라고사행 기차

 

참으로 덤덤하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라고사행 기차는

올곧게 똑바로, 넓게 벌판으로만 달리네

 

차창가의 나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평화롭기만 하네

 

곧은 철길, 넓은 벌판은

앞으로만 가는 시간, 살아가는 풍경이네

 

사라고사행 기차는

돌아오지 않는, 끝도 없는 세월을 달리네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보면

멀어져가는 풍경, 다가오는 기억들

 

마을이네ᆢ

목적지가 가까이 오네. 

잊어야지

 

들판을 똑바로만 가던ᆢ두시간 기차

 

사라고사, 아라곤 지방~ 에 왔다

 

 

  

어제, 기차를 못타서

오늘 일정도 취소되었기에

여기서, 하루를 묵기로

 

내일 오전까지는 도착하여야 한다

늘 바빴던 도시, 바르셀로나에~

.

.

 

 

오늘은 무얼할까?ᆢ

여전히 아무 것도 안할 생각ᆢ

그래도 뭔 일은 분명,

일어나고야 말 거다

 

 

화가 고야의 고향,

필라르 성모 성당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는

산티아고의 다리~

 

사연이 적지 않은 도시를 나는,

그저 서두르며, 스치듯 지나쳤다

출장이라는,

사연이랄 것도 없는 이유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캐고 있다

 

 

여유를 기다리며

 

언제나, 서두르지 않으며 살아갈까

여유를 부리는 척은 하여도, 째깍째깍

시간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억지로라도 잊으려 하여야만 오는 여유

여유에서 돌아오면, 잊은 시간을 거두려

두 배는 빠르게 달아나야 한다

 

침상에 누워, 창밖으로 먼 눈길을 두었다

평화로이 감은 눈가로 눈물이 고였다

슬픈 여유가 오기 전의 여유를 기다린다

 

 

여기는 이상한? 이들조차도 없다.

기다리다가 지친다

.

.

 

 

목을 축이고ᆢ

.

.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인적은 점점 없어지고,

태양은 사라져간다

.

.

 

 

홀로의 성찬을 차린다.

술잔이 하나뿐인 아쉬움

 

혼술의 매력

 

빈자리에는 누구든 불러낼 수 있어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까지도

말을 걸 수도,

들을 수도 있지

하고픈 말, 듣고픈 말

차마 못나누었던 말들까지도

눈동자를 마주보며

이야기할 수 있어

내키는 대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있지

감정이 격하여지면,

일어서면 돼

먼저 보내고프면,

보내면 되고

 

태양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여가지

아쉬움도 아픔도 사라져가지

날이 저물 듯,

마음도 가라앉으면

툭툭 털고 일어서야지.

돌아보면서

.

.

 

 

그 날, 사라고사~ 에는 바람이 불었다

늦잠을 자고~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텅~ 비어 있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

.

 

바람이 불면, 들꽃이 되고 싶어

들꽃들 무리에서 흔들리고 싶어

 

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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