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미루나무 아래에서

BK(우정) 2020. 1. 6. 21:10




미루나무 아래에서

 

 

길을 걷다가

나무에 걸린 연을 본다

금빛 연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연을 날리던 아이가 궁금해진다

 

밤을 새워 만든 가오리연이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연을 가리키며 울기만 할 때

눈물이 볼에서 얼어갈 때

연도 긴 꼬리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밤이 오고

연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을 때

논둑 길을 넘어지듯 집으로 왔다

 

나는 다음날에는

미루나무 아래로 가지 않았다

어제의 그 아픔이 죽을 만큼 싫어서

또 죽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가고

기억도 희미해져 가지만

누군가 멀리 떠나면

미루나무에 걸린 가오리연의 긴 꼬리가

자꾸 떠오른다

 

나는 다음날에도

미루나무 아래로 갔어야 했다

연을 내리던지

연을 멀리로 날려 보내던지

그도 저도 안되면

내 마음도 죽을 만큼 아프다고

죽고 싶지 않아 너를 두고 돌아선다고

말이라도 전했어야 했다

마음이라도 전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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