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557

고독한 식객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에 점령당하여 왔고 과거를 찾아가는 길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젊은 날, 대전발 영시 오십분 ~ 대전역 앞길을 조금 더 들어가면 아직도 후미진 골목이 있고 젊은 날, 쪼그려 자던 여인숙 입김을 불며 국물을 들이키던 육개장집 귀퉁이에 여전히 남아있다 돌아온 곳의 나 홀로 점심, 행복이다 . . 고독한 식객/BK 아련한 곳 시간의 뒤안길을 거슬러 눈길을 두면 그리운 풍경 그늘진 곳 후미진 골목을 돌아 발길을 옮기면 그리운 내음 따뜻한 곳 낡은 미닫이 문을 밀고 몸을 앉히우면 그리운 맛

깊숙이로

오늘, 제주는 조금 맑고 많이 흐리다 오후 3시 제주대학교 회의, 5시간의 여유 공항에서 제주대까지의 40리길 작은 길, 인적 드문 길로만 걸어 들어간다 올레길도 산길도 아닌 제주의 속살을 걷는다 ㆍ ㆍ ㆍ 깊숙이로/BK 멀리보다는 깊이 들어가고 싶다 표면의 밝음보다는 안쪽의 어둠으로 자꾸 들어가면 나의 안쪽도 보여질까 깊이 들어가며 안의 울림을 듣는다

백양사 가는 길

백양사 가는 길, 단풍은 떠나고 없었다 잎이 떠난 단풍나무와 갈참나무의 길 그래도 그 길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을 하늘, 잎 떠난 가지를 스치는 바람 계곡을 내려오는 물, 천년고찰의 고요 좋다. 나그네가 되어 잠시 머물기에는 백양사 가는 길 형형색색 화려하였던 잎들이 떠나간 자리 그 빈 공간을 하늘 높은 구름 가지를 스치는 바람 계곡을 내리는 물이 채우고 있다 머물고 있는 나 돌아보는 그림자 오고 가는 생각들이 거닐고 있다

한강에서

한강에서 강변에 서면 한강이 흘러온다 오래 전 구석기시대로부터 멀리 태백 검룡소로부터 강변에 서면 오늘이 보인다 강을 가르는 다리, 꽃의 물결 숲과 도시, 그 위를 지나는 해 강변에 서면 한강이 흘러간다 아득히 떠나갈 날 그 이후로 끝없는 황해 그 먼 바다로 강변에 서면 시공이 보인다 내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 내가 보는 것과 나를 보는 것

크로넨부르, 1664 블랑

크로넨부르, 1664 블랑 BK 와인의 나라 프랑스의 맥주 1664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온다 와인의 향미에 더해지는 꽃의 향기와 잎새의 맛 블랑 = 화이트 벨지안 화이트 스타일 하얀 거품이 매력적이다 거품은 새콤하며 거품 아래의 밝은 황금빛 향긋한 탄산의 맛이 흐른다 연이어 다가오는 진한 향 그리고 순하게 이어지는 맛 새콤함은 끝까지 유지되고 블랑의 글라스는 비워진다 꽃의 향기와 잎새의 맛 더해지는 매혹적인 그리움 향수의 나라 마드모아젤의 향기 2014년, 파리 뤼 비알라에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

삼일로 창고극장 명동성당을 나와 남산공원을 향하는 길 알고 있는 이들에게만 보일 수 있도록 '삼일로 창고극장'이 여전히 남아 있다. 1970년대 후반, 껍질을 깨던 고교 시절 어쩌다가 괜스레 혹은 멋으로 찾던 곳 고인이 된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 사춘기 무렵, 울타리를 넘던 반항적 욕구 그 무리함을 일부나마 정당화시켰던 곳 이해 못하는 카프카를 동경케하였던 곳 명동역 가는 길, 한 정거장을 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