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들/울 집, 울 동네

창밖의 연주

BK(우정) 2022. 7. 13. 06:16

2020년 7월 19일

 

지난 주 일요일, 밤새 내리던 비

아침에도 그칠 줄을 몰랐다

 

 

비를 맞이하려,

빠리 바게트에서의 가벼운 빵과 커피

 

공능 호수로 갔다

 

 

휴일의 이른 아침,

누구도 없는 곳에서 비의 풍경,

빗소리

차창을 내리고 우린,

한참을 비 내리는 호반에 있었다

 

나는 이 풍경, 이 소리가 좋다

잊고픈 것들을 쓸려보내고,

기억하고픈 것들을 품는 순간

 

우린, 호반에 차를 세우고

빗 속으로 들어갔다.

비에 젖는 나무, 풀잎들이 되어

 

투명한 우산은 하늘까지 전부 보이게 한다

빗소리와 수증기로 가득 찬 호수

 

시간은 얼마든지 있고, 비는 끝도 없이 내린다

비가 좋은 아이

 

 

비 내리는 날이 좋은 우리

비의 날,

호수의 노래와 율동을 자꾸 담는다

 

깊고 고요하다.

듣고 싶은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

휴일의 이 시간,

비에 젖고 있는 우리의 호수는

알프스나 로키의 호수보다도 멋지고

훨씬 사랑스럽다

 

세상에는 비와, 우리뿐이다. 이렇게

 

 

커피와 담배가 어울리듯

비와 차창가도 나름 어울리지

 

이런 날, 시 한 편 쓰지 못하면

감히 시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날 내키는 대로 쓰지 않고

단어와 어휘를 따진다거나

괜스레 눈을 감고 생각이라도 한다면

감히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빗방울이 차창에 닿아

아래로 뒤로 흘러내리듯

닿는 대로 느끼는 대로

편하게 써내려가야 글맛이 나지

 

이런, 벌써 다 써버렸네?

 

- 비 내리는 날, 차창가에서/BK

 

 

창밖의 연주

 

이제 빗소리를 들어볼까,

볼까, 느낄까

 

보슬보슬 내리는 소리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장대비가 퍼붓는 소리로

백사운드가 깔리면

장독대에 떨어지고

풀잎을 적시고

양철 지붕을 때리고,

강물 위로 뿌려지는 소리

소리들

 

넓게 퍼짐과 좁게 모아짐

중저음과 고음

창밖의 모든 것들이

이루어내는 합주

천지로 퍼지고 울려가는

그들의 화음과 율동을

듣고, 보고, 느끼며 나는

창안의 쇼파, vip석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시간

거룩한 초대의 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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