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친구

BK(우정) 2019. 7. 26. 05:49




친구

 

점심 무렵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친 후

구부정한 몸짓, 여윈 얼굴로 날 찾아 온 친구는

대뜸 기차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대포 한 잔 하자고 했다.

해는 중천에 걸렸는데, 우리는 서울역 만리동 골목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마냥 분위기 맞는 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요즘 기차는 기적을 울리지 않아 가늠이 수월치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막걸리 잔의 작은 진동으로

기차가 지나는 것을 있었다.

햇살은 창을 타고 들어와 어설프게 면도가 친구의 얼굴에 닿고,

뭔일이냐고 자꾸 물을 수도 없어 잔만 채워주는 손등위로 흘렀다.

담배 한가치를 무는 내게 불을 당겨주느라,

언뜻 가까이 다가온 친구의 눈자위는 다소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해는 기울고,

건물의 그림자가 불청객처럼 옆자리에 걸터앉을 즈음,

우리는 적당히 얼큰해져 눈물 웃음 반을 담은 얼굴로 마주보는데,

기차가 지나가는 진동은 더욱 예리하게 손과 가슴 속으로 떨려 들어온다.

굳이 계산을 하겠다며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는 그를 뒤로 하고,

여닫이 너머 담배를 무는 앞으로 길고양이 마리가 지난다.

한층 붉어진 하늘에는 곳을 찾아 헤매는 마리가 떠돌고,

구미행 차표를 끊어 쥐어주며,

뭔일이냐는 말대신 잘가라는 인사를 하고

역사를 나오는 눈앞에서 새들은 여전히 붉은 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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