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취중의 시는 노래처럼 쓰여지지만
취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는
생채기 위에 뿌려지는 소금처럼
아프도록 날이 서 가슴을 도려낸다
어두워진 창가, 반쯤 눈을 뜨고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종이 위로
무너지듯 쌓여져 가는 검은 글귀들을 본다.
플라타너스, 땅으로 내려 앉는 이파리들처럼
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이 지나는 신작로 위로 내려 앉고
가슴 속이 휑하여진 나는 한 발 물러서
낙엽에 묻혀버린 나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지난 이야기는 다가 올 이야기가 되고
다가 올 이야기는 오랜 이야기가 되어
노래도 아닌, 글도 아닌 모습으로 다가와
젖은 눈동자, 빈 가슴 속으로 흘러 내린다
취하지 않고 써 내려간 글귀들은
플라타너스, 땅으로 내려앉는 숱한 이파리들
나는 낙엽을 밟고, 멀리서 온 나그네가 되어
주점으로 향한다. 노래처럼 시를 쓰기 위하여
'우정의 글 > 우정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의 강 (0) | 2019.05.18 |
---|---|
강과 구름과 바람과 시간 (0) | 2019.05.17 |
가을은 흘러가고 (0) | 2019.05.15 |
가을에는 (0) | 2019.05.14 |
가을 날, 아내와 딸아이에게 차를 따르며 (0) | 2019.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