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 아내와 딸아이에게 차를 따르며
젊은 날
찬란한 빛깔로 어우러진 봄의 향연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오르던 사랑
그 사랑은
한여름의 폭우와 혹서를 겪고
이제 중년이 되어 가을 앞에 섰다
흘러간 세월
곱게 자라 준 딸아이는 한껏 성숙하고
우리의 머리칼은 가을 서리가 앉아 은색으로 물든다
낙엽이 쌓인 들판은
머지 않아 차가운 흰색으로 덮일 것이고
아이는 겨울 속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을은 황혼이 되고
몸과 마음은 조금 더 나약해진 모습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저물어 가는 겨울을 향할 것이다
이제는
가을 들녘, 밀레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간
다가 올 겨울을 맞이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여야 할 시간
가을 날
먼 길을 함께 걸어 온 아내와 딸아이에게 차를 따르며
내 사랑과 행복을 찻잔에 담는다
젊은 날의 찬란한 빛깔
짙은 녹음, 그리고 갈색의 풍경
머지 않아 다가올 순백색의 날들도 찻잔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