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의 상념 1333

강으로 갔습니다

강으로 갔습니다 강은 늘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흐릅니다 하늘을 가득 안고 곁의 산과 들풀까지도 안고 푸근하게 품고 투영합니다 낮이 가고 밤이 와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계절이 바뀌어도 강은 순응하며 흘러갑니다 강은 품고 순응하며 고요히 흐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는 강이 좋습니다 강처럼 삶을 흐르고 싶습니다 말보다 글이 좋고, 나보다 우리가 좋은 날 오늘의 강은 멀리서 흐른다 가까이서 맞이하는 반가움만큼이나 멀리서 바라보는 그리움도 좋다 바다의 파도도 시냇물의 소리도 없는 강 없는 듯 흘러가는 강 없는 듯 살고 싶고 잊혀지고만 싶은 날 오늘의 강은 멀리서 흐른다

두물머리로 갑니다

두물머리로 갑니다 두물머리로 가는 길ᆢ 강은 흐른다 좋아하는 강은 굽이쳐 흐른다 강은 구비 구비 돌아 흐르면서 더러는 그 안에 설움도 담고 남모를 사연도 담는다 강이 곧게만 흐른다면 크고 광활하게만 흐를 뿐 남모를 설움과 사연은 어디에 담으랴 인생도 사랑도 구비 구비 흘러야 그 맛이 난다 굽이치는 강은 용이 하늘로 오르듯 바다로 가고 굽이치는 사랑은 겨울을 난 꽃뱀이 되어 봄으로 가고 있다 ᆞ ᆞ 두물머리 두 개의 큰 물줄기가 머리를 맞대는 곳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으로 하나되는 곳 서로 다른 곳에서 발원하여 유구장장, 수 백리 물길을 제각기 흘러온 큰 물줄기들이 작은 소리도 흔들림도 없이 서로를 품어가고 있다 두물머리에 서면 포용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한 줄기 냇물이라도 고요히 품어본 적이 있었던가..

비를 거두며

비가 그친 후, 찬란하다 녹슨 철길도 반짝이고 나는 이 길을 따라 멀리 왔구나 기적을 울리지 못하는 기차가 되어 숲은 자리를 내어주고 바람결은 나를 짓궂게도 건드린다 너도 허공에서만 머무는구나, 바람이여 발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나처럼 외진 길은 다시 이어지고 막다른 길은 늘 열리는데 언제까지나, 길손이 되어 걸어야만 하는 길 잊혀지고, 휘청이어야 멈출 수 있을까 외진 길은 외지고, 막다른 길은 닫히는 날 그런 연륜과 세월, 시간의 소진 그림자가 모두를 가리우면 모든 인적이 귓전에서, 눈길에서 멀어져가면 그래서 나와 정지, 고요만이 남으면 풍경 속의 하나가 되어 햇살을 맞으리. 비 그친 날 오후 돌아오는 길에 강은 더 푸르고 가로등은 더 키가 컸다. 말도 없이 느리게 지쳐갔다, 나는 을지로 쌍화차 한잔 ..

테헤란로에서

테헤란로 강남 회의가 가장 많은 곳~ 4계절 내내 간다 여름, 테헤란로, 35도 보도 블록도 건물벽도 뜨겁다 도심의 여름 그들만의 감옥을 만들어 놓고 문도 창문도 꼭꼭 닫아버렸다 늦가을 비 오는 거리 비 오는 거리에 서면 온통 마음이 젖는 이들 맘 속에 묻힌 응어리들이 빗물에 젖어 쓸려 나오는 그 쓸쓸한 표정들에서 닮은 표정을 찾고 있는데 차가운 비는 더욱 더 내려 왜소한 이들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헤집어 내고 나 또한 다를 바 없이 콘크리트 지붕 아래 그 쓸쓸함을 맞고 있는데 잠시나마 갈 곳을 잃고 그저 바라만 보는 거리 쓸쓸함이 두려운 이들은 등불을 찾아 들어가고 거리에는 젖은 낙엽 마냥 젖은 이들만 머무르는데 그래도 비는 마냥 내리고 더 젖을 수 없는 몸과 더 젖을 수 없는 마음 그렇게 젖어버린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