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코로나19, 위험은 여전하다. 조심 또 조심

BK(우정) 2022. 3. 4. 05:32

갑자기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 버렸다. 2020년 1월 20일 첫 감염 사례가 확인되고 한 달 남짓 만인 3월 초 한국은 하루 확진자가 800명을 넘어서며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 최악의 감염대국으로 지목됐다. 이 시점에는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확진자가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무슨 이유인지 전세계 190여개 국가들로부터 입국 거부‧제한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노력과 각계와 소상공인들의 적극적 참여와 고통 분담으로 정부의 방역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한때 한국형 방역(K방역)이 성공적인 방역사례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2년 전과 똑같은 절박한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당장 지난 26일만해도 한국의 하루 확진자는 16만 3558명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도 318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재생산지수도 1.5까지 치솟았다. 위중증자와 사망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고추는 작아도 역시 고추

 

 K방역의 성과를 요란스럽게 자랑하던 정부의 태도도 갑자기 돌변했다. 정부가 고집하던 ‘검사’(test)와 ‘추적’(trace)은 물론이고 확진자의 격리와 치료를 모두 국민의 손에 떠넘겼다. 일상회복의 과정에서 백신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우기던 ‘방역 패스’도 명확한 근거와 설명 없이 중단했다. 유흥시설이나 요영병원과 같은 고위험군의 시설에서도 방역을 포기해버린 셈이다. 심지어 확진자의 동거인 자가 격리 규제도 풀어버렸다. 


그야말로 방역의 모든 것을 국민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셀프 방역’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국민이 ‘스스로 감염을 최소화하거나 예방접종을 받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동안 K-방역의 성공을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통과 백신 부작용의 두려움을 기꺼이 감수해왔던 국민들의 입장이 몹시 난처하다. 갑자기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황무지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떠들썩하게 단계적 일상회복을 밀어붙이던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오미크론의 감염력은 대단하지만, 위중증화와 치명률은 독감이나 풍토병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오미크론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마무리해줄 ‘종식자’라면서 오미크론을 ‘반기고 싶다’는 철없는 전문가도 있는 모양이다. 정부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위험한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정부의 해명이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미크론이 코로나19의 종식자라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오미크론도 역시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SARS-CoV-2)의 변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입장이다. 고추는 아무리 작아도 고추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오미크론은 절대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오미크론에 의한 사망자가 델타에 의한 사망자보다도 더 많아졌다는 보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미크론의 확신이 대세로 자리를 잡으면서 위중증자와 사망자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생활치료시설과 보건소의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재택치료 대상자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절박하다. 정부가 어렵사리 마련해놓았다는 위중증자 치료 시설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환자는 물론 보건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인 의사와 간호사의 감염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자칫하면 의료 체계가 통째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백신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퇴색되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 코로나19 백신이 오미크론의 감염을 효과적으로 막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접종 완료자가 확진 판정을 받는 돌파감염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백신이 감염을 막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감염자의 위중증화를 상당한 수준으로 줄여준다는 정부의 주장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야 하는 입장치 몹시 옹색하다. ‘3차 접종 완료자 중에는 사망자가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위태롭기만 하다.


백신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강조하는 백신 접종의 편익은 사회적‧통계적인 것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사회적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감염자가 줄어들고, 위중증‧사망자도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백신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에 사회적‧통계적 편익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시키고, 개인 차원에서의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부작용을 경험하는 백신 접종자에게 충분한 배상‧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과학적 인과성’을 핑계로 그런 책무를 회피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정책적 선택이다.

 

팬데믹의 정체와 종식

 

팬데믹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응징이라는 주장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다. 자연 생태계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유지‧보존되고 있다는 주장은 일부 원리주의자들의 일방적인 억지일 뿐이다. 사실 감염병은 생물체의 세포나 몸속에서 서식하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해서 발생한다. 바이러스‧박테리아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내서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갈등이 바로 펜데믹이라는 뜻이다. 


팬데믹은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 때문에 발생하는 소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이다. 멧돼지가 애써 도시를 구축해놓은 인간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이 구축해놓은 도심의 경계는 멧돼지의 입장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멧돼지가 도심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할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박테리아의 입장에서 인간의 세포도 절대 넘볼 수 없는 성역일 수 없다. 우리가 모든 바이러스‧박테리아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우리 몸의 세포에서 평화롭게 공생하고 있는 ‘프로바이러스’와 ‘프로박테리아’도 대단히 많다.


팬데믹이 진행되면 감염성은 커지더라도 독성이 약화된 변종이 등장한다는 주장도 바이러스의 ‘적응’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오미크론은 델타보다 훨씬 더 ‘친인간적’인 변종인 셈이다. 인간의 면역체계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160년 전 찰스 다윈이 밝혀낸 ‘진화론’의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진화는 언제나 단선적이고, 일방향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진화에서는 어떠한 방향성도 찾아볼 수 없다. 진화의 과정은 술에 취한 주정뱅이의 걸음처럼 비틀거리고, 우왕좌왕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심지어 뒤로 돌아가는 퇴화가 나타나더라도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감염력과 독성이 충분히 강한 변종이 등장해서 제한된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남길 가능성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변종이 반드시 보건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2020년 9월에 등장한 알파 변종은 영국 런던에서 출현했다. 뉴욕과 동경에서 출현했던 변종도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방역 때문에 서식 환경이 나빠진 선진국의 도시에서 오히려 더 큰 진화의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 백신과 대증요법이 바이러스의 진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는 팬데믹의 아픈 경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천연두‧소아마비‧홍역‧독감‧말라리아 등 팬데믹의 종류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의 왕조실록에 따르면 한성은 2년마다 한 번씩 ‘역병’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역병의 정체도 알 수 없었고, 강압적인 봉쇄 이외에는 뾰족한 대책도 없었다. 그런 역병은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역병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이유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18세기 영국의 제너가 처음 개발한 백신이 만능이었던 것도 아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백신은 28종뿐이고, 그 중에서 바이러스의 영원한 퇴출에 성공한 경우는 천연두뿐이다. 1954년에 백신을 개발한 소아마비도 영구적 종식을 코앞에 두고 있다.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한 집단 면역과 바이러스의 토착화가 팬데믹 종식의 가장 보편적인 가능성일 것이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이덕환의 과학세상] 2년 전으로 되돌아간 방역시계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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