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여행, 어디론가

투니스의 메디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

BK(우정) 2021. 3. 13. 16:07

낯설음 그리고

피로와 어느 정도의 무기력ᆢ

 

그날은 룸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멀리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자꾸 나를 끌어당긴다. 일어서자

 

 

투니스의 메디나, 튀니지

그 뒷골목, 속살 깊숙이로 들어간다

 

 

이슬람 국가에는 어디나 구시가지, 메디나가 있지만ᆢ

투니스의 메디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림이 된 사진

 

그들이 되어 하염없이 걸었고

 

 

지친 발걸음이 향한 뒷골목의 카페

허브를 띄운 그들의 커피에서는

시간의 향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부르기바 대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중심

프랑스 상제리제 거리를 모방한 길

이 길의 끝, 프랑스문 뒤에는

프랑스 뒤의 중세 아랍이 공존한다

중세 유럽을 뒤로 하고 아랍으로의 길

전통시장인 수크를 따라 오르면

중세 아랍의 구시가지 메디나,

그 뒷골목들을 만난다

 

 

투니스를 찾는 사람들은

프랑스식 건물과 문화, 그리고

2,500년전의 도시 카르타고,

튀니지안 블루의 마을 시디 부 사이드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나는 가장 먼저 들른 곳

삶의 설움과 애환이 끈적끈적한 곳

메디나의 뒷골목을 잊을 수가 없다

 

 

천년 남짓한 폐허의 도시

가는 물길처럼 이어지는 좁은 골목들

외진 그늘들의 연속

방치된 쓰레기 더미 위로

고양이들은 무리를 지어 지나고

빛바랜 칸두라와 차도르를 두른

오래된 그들, 튀니지안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그림이 된 사진

 

 

어두운 식당, 물담배 연기 오르는 카페

폐허의 벽들 사이로

선뜻선뜻 비치는 슬픈 장식들

그들의 애환, 그들만의 이야기들

계절이 저무는 마을에 해도 저물고

저물어 가는 세월인가

내 또래인 듯, 굽은 어깨의 사내는

멀리서 작은 보따리 하나로

가족을, 집을 향하고 있었다

 

 

여행 스케치

 

언젠가, 그 날

모르는 곳, 모르는 카페에 있었다

모두를 두고 멀리 떠나서

두고 온 모든 것들을

먼 풍경으로 보고 있었다

기억으로 두고 있었다

 

언어도 얼굴도 생소한

이방인들만의 그 카페

생각할 이도

말을 거는 이도

연연해 할 일도 없는

통신마저도 두절된 곳에서 나는

두고 온 모든 것들을

온전히 잊으려 하였고

잊어버렸다. 그 시공에서는

 

내가 할 일은

담배를 무는 것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

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바람과 햇살이

허허로이 지나는

정지된 시간의 창가에서

오래도록 긴 글을 썼다

먼 이야기

가슴에 켜켜이 쌓여온 이야기

잊혀진 이야기들에 관하여

잊혀질 이야기들에 관하여

 

시간은 움직이고

두고 왔던 곳

멀어졌던 풍경으로 돌아온 지금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실로

완벽한 도피였다

또 다른 시간이었다

각인될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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