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도 전설은 만들어진다.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이라는 작가가 그렇다. 열아홉 살 때 사강은 예비학교를 졸업하고 소르본 입학 시험을 치렀으나 떨어진다. 좌절감에 빠진 사강은 미친 듯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단 6주 만에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한 편의 소설은 사강이라는 이름을 전설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온 세계 젊은이들은 통과의례나 겉멋으로라도 이 소설을 읽었고, 할리우드는 발 빠르게 영화를 만들었다. 사강이라는 작가는 당시 기준으로 보면 신인류였다. 사강은 질서에 저항하는 반사회적 성향이 짙게 깔린 발칙한 상상력을 무기로 시대를 뒤흔든 작품을 탄생시켰다.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열일곱 살짜리 소녀 세실이 주인공이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고 기숙사에서 자란 세실은 아버지에게 집착하는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소녀다. 그러나 아버지가 안느라는 여인과 결혼을 선언하면서 세실의 심경은 복잡해진다. "울적함과 달콤함이 뒤엉킨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세실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아버지의 전 애인을 동원해 연극을 꾸미는 등 유치한 분노를 표시하면서 전전긍긍한다. 세실은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 반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묘한 보호본능을 느끼기도 한다. "맞아요. 나는 사리분별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예요. 건강하면서도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죠."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짓궂은 장난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아버지와 헤어진 안느가 사고(자살이 의심되는)로 죽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안느의 죽음 이후 세실은 의미 없는 연애를 하고 술과 낭비에 빠지는 등 사춘기적 반항으로 점철된 날을 보낸다. 그러면서 난생처음 `슬픔`에 대한 긴 사색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안느, 안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그러자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은 채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어서 오라 슬픔이여."
소설이 나왔을 때 프랑스 문단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고도의 문학성과 어설픈 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니 의심할 만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누군가가 대신 써주었거나 짜깁기를 했을 거라고 비난의 화살을 쏘았고 또 일부는 상업적인 작품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대량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가치관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사강 열풍을 주도했다. 사강은 특이하게 소녀 취향의 혼성모방을 즐겼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그의 원래 성은 사강이 아니라 `쿠아레`다. `사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사강의 인생은 좌충우돌이었다. 스피드광이었던 그는 엄청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지속적인 폭음과 도박, 사랑과 이혼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60세이던 1995년 마약복용 혐의로 법정에 선 그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희대의 발언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강은 "진정 후회 없는 신나는 인생을 즐겼다"는 유언을 남기고 69세로 사망했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2/09/59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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