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K(우정) 2020. 3. 6. 13:45

폴은 서른아홉 살 난 실내장식가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 문 아래 놓인 편지를 발견한다. 한때는 '푸른 쪽지'라고도 불린 속달우편. 우편집배원이 밀어 넣고 갔으리라. 거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 오후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은 바람둥이 로제와 6년째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로제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 앞에 스물다섯 살 청년 시몽이 나타난 것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둘러싸인 몽상가 같은 사나이. 시몽은 폴에게 반해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시몽의 애정 공세 앞에서 폴은 불안감과 신선한 호기심을 느낀다. 젊고 순수한 청년 시몽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폴이 세월을 통해 깨달은 감정의 덧없음은 시몽의 사랑 앞에서도 그 종말을 예감할 뿐이다.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으로 폴을 콘서트에 초대한다. 초대장 앞에서 폴은 상념에 젖는다. 전축을 뒤져 브람스의 협주곡을 찾아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로제를 진정 사랑하기보다는 사랑한다고 여겼을 뿐인지도 몰랐다. 콘서트홀에서 시몽을 만난 폴이 고백한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몽이 대답한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써서 크게 성공한 소설이다. "인생에 대한 사탕발림 같은 환상을 벗어버리고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렸다"는 평가에 걸맞게, 작가로서 사강의 본질을 확인하게 해준다. 평단은 사강의 작품에서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발견한다. 사강은 1935년 오늘 프랑스 카자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아홉 살이던 1954년 발표한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단숨에 유럽 문단의 별이 되었다.


어느 인생에나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사강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 수면제 과용과 마약 중독, 도박과 경제적 파산을 경험하며 나락을 맛보았다.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정에 선 그녀는 외쳤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타인은 나를 동정하고 경멸할 수도 있지만 나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사강은 죽음(2004년 9월24일) 앞에서 말했다. "진정 후회 없이 신나는 인생을 즐겼다"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시몽은 변호사다. 함께 간 식당에서 포도주 잔을 앞에 놓고 그가 폴에게 말한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폴은 반박하지 않고 웃으며 말한다.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 그렇다. 무시무시하다.


이상, 출처;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kr/article/201906210641278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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